장바티스트 콜베르: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SilvonenBot (토론 | 기여)
잔글 로봇이 더함: et:Jean-Baptiste Colbert
S.BULLET. (토론 | 기여)
8번째 줄:
그는 [[1619년]] [[랑스]]의 직물상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알려져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그는 [[예수회]] 대학을 졸업하고 [[장 샤플랭]]의 아버지가 운영하던 [[파리 (도시)|파리]]의 [[은행]]에서 근무하였다고 한다. 21세가 되던 [[1640년]] 육군성에서 감찰관으로 근무하게 되었으며 이로인해 [[1648년]] 있었던 [[프롱드의 난]] 사건 당시 악명을 얻게 되었다. [[1648년]] 마리 샤롱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100,000[[리브르]]를 [[지참금]]으로 준비하였다. 그의 결혼에는 콜베그가 50,000 리브르를“직업을 이용해 끌어드렸다”고 언급되어 있다.
=== 프롱드의 난 ===
[[프롱드의 난]] 당시 콜베르는 왕령 법정의 중개인으로 근무하면서 [[귀족]]에 의해 위기에 처한 [[루이 14세]]의 왕당파를 위해 일했다. 이 일로 망명중이던 [[마자랭]] [[추기경]]과 친분을 쌓게 되었다.
 
=== 마자랭의 죽음과 콜베르의 등장 ===
재상이었던 [[마자랭]]의 망명 당시 [[루이 14세]]는 콜베르에 대해 점차 신임하게 되었다. [[1661년]] [[마자랭]]이 사망하자 콜베르는 그의 숨겨둔 재산을 찾아내었다. [[1664년]] 콜베르는 궁전 관리인이 되었으며 [[1665년]] 재무장관이 되었다. [[1669년]]에는 해군성 장관과 상무성, 식민성 장관 및 궁정 관리인을 겸하게 되어 짧은 기간이었으나 전쟁을 제외한 모든 국사를 책임지는 위치에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