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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의 영국 수도승이었던 길다스가 기록하기를 털이 부수수하고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픽트인들이 배에 나누어 타고 로마인들이 버리고 간 스코틀랜드 지방에 "처음으로" 정착하였다고 한다. 즉 픽트인이 브리튼 원주민이 아니었다는 점이 유추되고 있다. 기원후, 800년대에 영국 수도승 네니우스(Nennius)는 픽트인은 처음 [[오크니 제도]]에 정착한 후, 남쪽으로 침입했다고 했고, 8세기초 노섬브리아 성직자 비드는 픽트인들이 보트를 타고 항해하다가 폭풍에 밀려 영국에 상륙했다고 기록했다. 픽트인은 처음 북아일랜드로 갔지만 켈트족이 나눠줄 땅이 없다고 하자 북부 영국으로 건너갔다는 것이다. 10세기 이전에는 픽트인이 스코트인을 정벌하였으나, 11세기 이후에는 스코트인이 픽트인을 정벌하여 통합되었다.
 
픽트인은 모계상속 사회였다. 왕실 혈통이 여성 핏줄로 계승되었는데, 그것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부족에게도 나타난다. 아이들의 양육은 친부가 아닌 양부에게 맡겨졌다고 한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무사 교육을 받았고 사냥을 즐겼다고 한다. 영국내영국 내 픽트인의 거주지는 대체로 [[포스 강]]과 [[클라이드 강 (스코틀랜드)|클라이드 강]] 이북 지역이었으며 로마 시대 역사가들과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의 세계지도에 언급된 현재 스코틀랜드, 칼레도리아의 사람으로 추정하는데 명확하지 않다. 이들은 [[게일어]]로 [[달 리아타]]라 불린 픽트랜드 지역에 왕국을 세웠다. 11세기 [[알바 왕국]]이 팽창하자 픽트인은 독자적인 정체성을 상실하고 [[스코트족]]으로 동화되었다.
 
픽트인과 관련한 기록은 매우 적은 편이다. 6세기 [[베다 베네라빌리스]]가 남긴 《[[잉글랜드 교회사]], ''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 등에서 언급되고 있다. 오랫동안 픽트인은 그 생활상이 밝혀지지 않은 신비스런 부족으로 남아 있었다. 최근 [[유럽]] 각지의 [[유럽의 고대 후기|고대 말]]과 [[유럽의 중세 초기|중세 초]]의 역사를 비교하면서 픽트인에 대해 보다 자세한 이해가 이루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