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하의 기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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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축구의 역사에서 '''도하의 기적'''(-奇蹟), 또는 일본 축구의 역사에서 '''도하의 비극'''({{lang|ja|ドーハの悲劇|도하노히게키}})은 [[1994년 FIFA 월드컵|1994 미국 월드컵]] [[199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아시아 지역 최종예선]]에서 마지막 순간에 본선 진출팀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으로 바뀐 사건을 가리킨다.<ref>{{뉴스 인용|제목=도하의 奇蹟|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3000209103004&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30&officeId=00020&pageNo=3&printNo=22329&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날짜=1993-10-30}}</ref>
 
본선 진출국이 뒤바뀌게 된 것은이유는,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이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이라크]]와의 최종 경기에서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하여 무승부를 기록, 일본이 승점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과 동률을 이루고도 골득실에골득실차에서 밀려 본선행 티켓을 놓쳤기밀렸기 때문이다. 그 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은 북한에게 2점차 이상으로 이기고, 사우디아라비아 혹은 일본이 무승부를 기록해야 본선 진출이[[미국]]행이 가능했던 상황이었다.
 
== 최종 예선 상황 ==
[[199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아시아 지역 1차 예선]]에서 바레인, 레바논, 인도, 홍콩 등과 D조에 속해 있던 대한민국은 1차 예선을 무패로 마무리하며 조 1위로 통과했으며,<ref>{{뉴스 인용|제목='94월드컵축구예선 韓國(한국) 무패로 1차마무리|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61400329119012&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06-14&officeId=00032&pageNo=19&printNo=14784&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저자=|날짜=1993-06-14}}</ref> 이후 6개 조를 1위로 통과한 6개 팀이었던 이라크, 이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 대한민국, 사우디아라비아, 일본 중 본선에 진출할 2개국을 뽑기 위한'''(당시 예선에서는 아시아의 본선 진출팀이 2팀이었음)''' 풀 리그 경기가 [[카타르]]의 수도 [[도하]]에서 개최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월드컵 축구 亞洲 최종예선전 카타르 확정|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070700209123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07-07&officeId=00020&pageNo=23&printNo=22221&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날짜=1993-07-07}}</ref>
 
대한민국은 난적 이란과의 첫 경기에서 3:0으로 완승을 거두며 본선 진출에 큰 어려움이 없을 듯했다.<ref>{{뉴스 인용|제목=한국,이란 격파 3대0|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1700209101003&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17&officeId=00020&pageNo=1&printNo=22317&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이재권|날짜=1993-10-17}}</ref> 그러나 이후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 동점골을 허용해 각각 2:2, 1:1로 비기게 되며 본선 진출이 점점 더 어려워지게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韓國,이라크와 무승부|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000209101003&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0&officeId=00020&pageNo=1&printNo=22319&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이재권|날짜=1993-10-20}}</ref><ref>{{뉴스 인용|제목=韓國,사우디와 무승부|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300209101005&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3&officeId=00020&pageNo=1&printNo=22322&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이재권|날짜=1993-10-23}}</ref> 남은 경기는 일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두 경기였다.
 
이전까지의 축구 전적에 따르면, [[1954년]]에 처음 경기를 가진 이래 일본과의 월드컵 예선 전적은 7승 3무로 [[대한민국]]은 일본에 대해서 승률이 매우 높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월드컵 對日戰 무패신화 종지부 힘한번 못쓰고 졌다|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600329119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10-26&officeId=00032&pageNo=19&printNo=14899&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저자=주길치|날짜=1993-10-26}}</ref> 그러나 [[1993년]] [[10월 25일]]에 열린 일본과의 경기에서 후반 15분 [[미우라 가즈요시]]에게 선제 결승골을 허용한 대한민국은 0:1로 패했고, 1승 2무 1패, 3위로 처지면서 자력 진출이 불가능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한국 졸전 日에 패배|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600329101005&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10-26&officeId=00032&pageNo=1&printNo=14899&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저자=주길치|날짜=1993-10-26}}</ref>
 
== 마지막 경기 ==
마지막 경기는 [[승부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3경기마지막 3경기는 모두 마지막[[1993년]] [[10월 28일]] 같은 시간에 치러지게 되었다.<ref name="199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최종전" /> 마지막 경기를 남겨놓고 사우디아라비아는 1승 3무로 승점 5점이었으며, 일본은 2승 1무 1패로 승점 5점, 대한민국은 승점 4점이었다.<ref>{{뉴스 인용|제목=본선티켓 主人 내일밤 결정|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700329119009&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10-27&officeId=00032&pageNo=19&printNo=14900&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저자=주길치|날짜=1993-10-27}}</ref>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이 모두 승리를 거둔다면 대한민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의 최종 경기에서 아무리 많은 골을 넣어 이긴다고 해도 승점에서 밀려 본선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이었다. 대한민국이 진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사우디아라비아 축구 국가대표팀|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일본]] 중에서 한 팀이 패배 혹은패하거나 무승부를 기록한 다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상대로 최대한 많은 골을 넣어 골득실차를 높여야 하는 방법 밖에는방법밖에 없었다.<ref name="199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최종전" />
 
최종전은 [[1993년]] [[10월 28일]]에 열렸다. 대한민국은 후반전에 득점을 몰아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3:0으로 누르고 승리를 거뒀다.<ref name="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뉴스 인용|제목=韓,월드컵 3회연속 본선|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900099125005&editNo=16&printCount=1&publishDate=1993-10-29&officeId=00009&pageNo=25&printNo=8573&publishType=00010|출판사=매일경제|저자=|날짜=1993-10-29}}</ref> 같은 시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경기는 사우디의 4:3 승리로 경기가 끝난 상황이었으며,<ref>{{뉴스 인용|제목=월드컵축구월드컵 축구 亞洲 최종 예선 "神은 결국 韓國을 택했다"|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900209123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29&officeId=00020&pageNo=23&printNo=22328&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이재권|날짜=1993-10-29}}</ref> 일본은 이라크에 2:1로 앞선 채 후반 45분이 끝나고 추가 시간이 주어진 3분이 거의 끝나 가던 상황이었기에, 대한민국 대표팀의 진출은 거의 실패한 것에 가까웠다.<ref name="이라크-일본">{{뉴스 인용|제목=94W컵亞洲최종예선 이라크 10초남기고 일본에 기적의 동점골|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2900329119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10-29&officeId=00032&pageNo=19&printNo=14902&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저자=주길치|날짜=1993-10-29}}</ref> 하지만 2:1로 앞서고 있던 일본이 경기 종료 10초 전에 내준 코너킥 상황에서 [[이라크]]의 [[자파르 옴란 살만]]이 헤딩한 것이 골문 아래 구석으로 들어가면서 점수가 2:2가 되었고, 경기는 무승부로 끝나게 되었다.<ref name="이라크-일본"/> 이 경기로 대한민국과 일본은 승점이 같아졌지만 골득실에서 대한민국 +5, 일본 +3으로 대한민국이 앞서게 되어, 마지막 10초 전에 들어간 이라크의 단 한 골로 인해 일본이 결국 [[1994년 FIFA 월드컵|미국 월드컵]] 본선에 탈락하고 대한민국이 진출하는 이변이 발생한다.<ref name="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class="wikitable" style="margin: auto;text-align: center;"
{{참고|1994년 FIFA 월드컵}}
 
우여곡절 끝에 본선 진출 티켓을 따내기는 했으나, [[대한민국]] 축구계는 큰 홍역을 치렀다. 특히 당시만 해도 후진적이던 축구 시설과 대표팀 운영에 대한 비난이 봇물처럼 쏟아졌으며,<ref>{{뉴스 인용|제목=월드컵 축구 "한국축구,본선에선 새모습 보이자"|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3000209123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0-30&officeId=00020&pageNo=23&printNo=22329&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이재권|날짜=1993-10-30}}</ref><ref>{{뉴스 인용|제목=월드컵 亞洲최종예선 결산 "韓國축구 거듭나야 한다"|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03000329119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10-30&officeId=00032&pageNo=19&printNo=14903&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저자=주길치|날짜=1993-10-30}}</ref> 이는 [[차경복]] 기술위원장을 비롯한 기술위원회 모두가 사퇴하는 것으로 이어졌고,<ref>{{뉴스 인용|제목=월드컵대표 개편 표류 축구協 기술위 전원 사퇴로|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1090032911901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11-09&officeId=00032&pageNo=19&printNo=14912&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저자=|날짜=1993-11-09}}</ref> 후임 기술위원장으로 [[박경화]]가 임명되어 새로운 기술위원회가 구성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대한축구協 기술委長 박경화 씨 임명|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1160032911801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11-16&officeId=00032&pageNo=18&printNo=14918&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저자=|날짜=1993-11-16}}</ref> 의견이 분분하였던 대표팀의 [[김호 (축구인)|김호]] 감독 유임 문제는 일단 월드컵 본선까지는 임기를 보장하는 것으로 결론지어졌으나,<ref>{{뉴스 인용|제목=월드컵축구 金호감독 유임 확정|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11800209123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1-18&officeId=00020&pageNo=23&printNo=22347&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날짜=1993-11-18}}</ref> [[유기흥]] 코치가 사퇴하였고,<ref>{{뉴스 인용|제목=월드컵축구 대표팀 유기흥코치 사퇴|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12500209123009&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1-25&officeId=00020&pageNo=23&printNo=22354&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날짜=1993-11-25}}</ref> [[허정무]]가 새 코치로 들어오게 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새 대표팀 구성 축구協 코치에 許정무씨|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20100209123001&editNo=40&printCount=1&publishDate=1993-12-01&officeId=00020&pageNo=23&printNo=22359&publishType=00010|출판사=동아일보|저자=|날짜=1993-12-01}}</ref> 본선 진출에 실패한 [[일본]] 또한 [[한스 오프트]] 당시 감독이 사임하는 등의 변화가 있었다.<ref>{{뉴스 인용|제목=日축구대표 오프트 감독 사임 월드컵 본선 친출실패 책임|url=http://dna.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311130032911901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3-11-13&officeId=00032&pageNo=19&printNo=14916&publishType=00010|출판사=경향신문|저자=|날짜=1993-11-13}}</ref>
 
또한 이 때까지 축구에 있어서는 [[일본]]을 과소평가하던 면이 없지 않았으나, 이 사건을 계기로 한·일전 축구 경기는 경쟁 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으며시작했다. 일본이는 측에서도일본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마찬가지였다. 이것은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 경쟁을 통해 강렬하게 분출되었으며, 특히 [[1998년 FIFA 월드컵|프랑스 월드컵]] 예선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이 같은 조에 편성되면서 한층 가열되었다. 이러한 분위기는 [[1997년]] [[9월 28일]]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 경기장|도쿄 국립 경기장]]에서 벌어진 [[도쿄 대첩]]에서 극에 달했다.
 
[[1994년 FIFA 월드컵]]이 끝나고 열린 [[1994년 아시안 게임]]의 축구 8강전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의 리턴 매치가 성사됐다. 당시 일본은 도하에서 [[대한민국]]을 침몰시켰던 [[미우라 가즈요시]]를 다시 한 번 앞세웠고, [[미우라 가즈요시]]가 선제 골을 넣으며 대한민국 앞에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도하 패전의 설욕을 벼르고 있었고, [[황선홍]]과 [[유상철]]이 득점한 대한민국은 난타전 끝에 3:2로 [[일본]]에 승리하며 도하에서의 패전을 설욕했다.
 
1990년대 후반까지 대한민국과 일본과의 축구 경기는 과열 양상을 띠었으며 ‘전통의 라이벌’이라는 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편, 이러한 라이벌 의식은 [[도쿄 대첩]] 이후 동반자 의식으로 변화하기 시작했고, [[2002년 FIFA 월드컵]] 대회의 성공적인 공동 개최 이후 상호간의 이해가 높아지면서 많이 약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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