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릴라이움 전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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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릴라이움 전투'''혹은 '''도릴라에움 전투'''는 [[1097년]] [[7월 1일]] [[제1차 십자군]] 운동 중에 일어난 사건으로 [[셀주크 투르크]]와 [[십자군]]이 [[아나톨리아]]에 있는 [[도릴라이움]] 근처에서 벌인 전투이다.
 
 
 
== 배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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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의 행군을 거친 뒤 6월 30일 저녁 보에몽의 군대는 파괴된 마을 도릴라이움(많은 학자들이 이 장소를 근대의 도시 [[에스키세히르]](Eskişehir)가 있는 곳으로 비정하고 있다.)근처 팀브레스(Thymbres)강의 북쪽 강안에 있는 목초지에 진영을 설치했다.
 
 
== 전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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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향 ==
십자군은 적어도 얼마간 킬리지 아르슬란의 재보를 획득하고 부유해졌다. 셀주크 군은 퇴각하였고, 아르슬란은 동방의 영토에 좀 더 신경을 써야만 했다. 이에 따라 십자군은 [[안티오키아]]로 향하는 아나톨리아의 진군로에서 적의 저항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여름의 열기를 견디며 3달 동안 아나톨리아를 돌파한 끝에 십자군은 10월에 [[안티오키아 공방전]]을 시작하였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