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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과 훈련 ==
민간 청소년단체로서의 [[화랑도]]는 [[화랑도|화랑]]과 그를 따르는 낭도(郎徒)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576년]] 이후 신라의 국방 정책과 관련하여 이를 신라의 관에서 운영하게 되면서 조직이 체계화되었으며, 이들 [[화랑도|화랑]]의 총지도자인 [[국선]](國仙)을 두고, [[화랑도|화랑]]의 예하도 수개 [[문호]](門戶)로 구성하게 했다. [[화랑도]]의 총지도자인 [[국선]]은국선은 원칙적으로 전국에 l명, [[화랑도|화랑]]은 보통 3-4명에서 7-8명에 이를 때도 있었으며, [[화랑도|화랑]]이 거느린 각 문호의 화랑 낭도는 수백에서 수천 명을 헤아렸다.
 
[[국선]]·[[화랑도|화랑]]·낭도의 자격에는 특별한 제한을 두지 않아, 신분 계급·[[승속]](僧俗)을 막론했으므로, 때로는 거리를 방황하던 고아였던 미시랑(未尸郞)이 국선에 오르기도 하여 신분보다 인격과 덕망과 용의(容儀)만을 중시했던 것이다.
 
== 이념 ==
음악이 [[화랑도]]의 수련에서 중요한 방식의 하나인 것은 이미 언급한 바와 같거니와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면 [[향가]]와 향가 작가의 대부분이 [[화랑도]]와 결부되어 있다.
 
즉 [[효소왕]] 때의 [[득오곡]](得烏谷), [[경덕왕]] 때의 [[월명사]](月明師)·[[충담사]](忠談師), [[경문왕]] 때의 요원랑(遼元郞) 등 4선(四仙) 등으로서, 이 중 충담사는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 요원랑 등은 〈현금포곡〉(玄琴抱曲), 〈대도곡〉(大道曲), 〈문군곡〉(問群曲) 등을 지었으며, [[월명사|월명사는]] 자신이 [[국선]](國仙)의 도에 속하며 단지 향가를 알 뿐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한다. 이 밖에도 [[신라]] 국민들은 [[화랑도|화랑]]들의 아름다운 행적이 있을 때마다 향가를 지어 그들을 기리거나 위로했다.
 
== 원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