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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라토 약탈과 통치권 회복 ====
1508년 교황 율리오 2세가 주도하여 벌어진 캉브레 동맹전쟁(1508~1516)은 장기화 되면서 전쟁상황이 매우 복잡한 양상을 띠며 전개되었다. 전쟁초기에 손쉽게 목적이 달성돠자달성되자 각국은 이해관계에 따라 배신과 역동맹을 재결성하는 일이 번복되며 전쟁이 이어졌다. 전쟁 초기에 개전의 본래 목적이였던 베네치아의 세력을 약화시키는것은 성공적이였다. 그러나 전쟁을 치루는 동안에 이탈리아에서 동맹국인 프랑스의 영향력이 커져갔다. 이를 경계한 교황은 1510년 베네치아와 새로운 동맹을 체결한후 북이탈리에서 프랑스 세력을 몰아내고자 하였다.
 
프랑스에 대해 성무정지 조치를 내리자 프랑스는 이에 반발하며 교황에 대한 순명거부와 율리오 2세의 조속한 폐위추진을 선언한다. 이를 위해 1511년 11월 피렌체가 통치하고 있는 피사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1494년 이후 프랑스의 우방으로 캉브레 동맹전쟁중에 애매한 중립을 고수하던 피렌체는 공의회 개최를 수용하였고 교황은 이런 결정을 내린 피렌체 공화정 수뇌부에 대해 분노하였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응징할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