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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원파'''(''Pluralists''): 당시 재임 중인 교황의 승인에 따라 소집된 원정을 모두 십자군이라고 한다.<ref>{{Harvnb|Riley-Smith|2009|p=27}}</ref> 이것은 교황이 소집한 모든 군사원정이 그 원인, 정당화, 원정 지역에 무관하게 모두 십자군으로서 동등한 유효성을 갖는다는 기독교회의 입장을 반영한다. 또한 [[베르나르 드 클레르보]] 같은 십자군 시대 당대인들도 이렇게 생각했다. 이 넓은 정의에 따르면 이교도 원주민을 개종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 [[북방 십자군]], 기독교 이단을 토벌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알비 십자군]] 및 [[후스 전쟁]]도 십자군이 된다. 또한 정치적 이득을 목적으로 한 전쟁, 예컨대 시칠리아의 [[아라곤 십자군]] 역시 [[교황 인노첸티우스 3세]]가 1202년에 [[마르크바르트 폰 안바일러]]를 파문하고 토벌을 명했기에 십자군이 된다.<ref>{{Harvnb|Lock|2006|pp=255–56}}</ref> 또 여러 교황들이 신성로마황제 프리드리히 2세와 그 아들들을 파문하고 내린 토벌령도 십자군이고,<ref>{{Harvnb|Lock|2006|pp=172–80}}</ref> [[잉글랜드의 군주|잉글랜드왕]] [[헨리 3세]]에 대한 두 차례의 토벌령도 십자군이며,<ref>{{Harvnb|Lock|2006|p=167}}</ref> 이베리아 반도에서 무슬림을 몰아낸 [[레콩키스타]]도 십자군이다.<ref name="Davies 1997, pp. 362–364">{{Harvnb|Davies|1997|pp=362–64}}</ref>
* '''일반파'''(''Generalists''): 라틴 교회와 관련되어 신앙 수호를 목적으로 싸운 모든 종교전쟁을 십자군으로 본다.
* '''대중파'''(''Popularists''): 종교적 열정에 기반하여 대중 다수의절대다수의 참여로 고조된 것들만 십자군이라고 한다. 이에 따르면 제1차 십자군과 [[군중 십자군]]만이 십자군이라 할 수 있다.<ref name="Constable 2001 12–15"/>
 
당시 기독교인들은 [[무슬림]]을 [[사라센인]]이라고 불렀다. "무슬림" 및 "이슬람"이라는 말은 유럽에서는 16세기 이전까지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ref name="Tolan2002xv">{{Harvnb|Tolan|2002|p=xv}}</ref> 원래 "사라센인"은 그리스-로마 전통에서 아라비아 속주의 사막에 사는 비[[아랍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ref name="Retso505">{{Harvnb|Retso|2003|pp=505–06}}</ref> 그러다 아랍 부족들도 사라센인이라는 범주에 포함되게 의미가 변화하였고, 12세기가 되면 오늘날의 "무슬림"과 같은 의미의 민족적 종교적 지칭어로 중세 문헌에서 사용되었다.<ref name="Retso">{{Harvnb|Retso|2003|p=96}}</ref> 한편 무슬림들은 서유럽인들을 "[[프랑크인]]" 또는 "라틴인"이라고 부르며 [[비잔티움 제국]]의 "그리스인"과 구분했다.<ref>{{OED|Frank}}</ref><ref>{{OED|Latin}} 협역 취합 및 교준</ref> [[알리 이븐 알아시르]] 같은 중세 무슬림 역사가들은 십자군을 "프랑크 전쟁({{llang|en|Frankish Wars}}, {{llang|ar|حروب الفرنجة|후룹 알파랑가}})"이라고 불렀다. 현대 아랍어에서는 서양에서 사용하는 "십자군"이라는 말을 그대로 수입하여 "십자가 원정들({{llang|en|campaigns of the cross}}, {{llang|ar|حملات صليبية|하말라트 살리비야}})"라고 부른다.<ref>{{Harvnb|Determann|2008|p=13}}</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