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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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히데노부가 사망한 이듬해인 게이초 6년([[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는 기후 성에 대한 폐성(廃城)을 결정했고, 오쿠다이라 노부마사(奥平信昌)에게 10만 석을 주고 가노 성(加納城)을 쌓게 하였다. 이 무렵 기후 성 산꼭대기에 있었던 천수각이나 야구라(櫓)、산츄(山中)、산기슭의 석축 성벽 등을 가노 성으로, 불타고 남은 건축물의 자재는 오가키 이치아카사카(大垣市赤坂)의 오챠야시키(お茶屋敷)로 옮겨졌다고 한다. 이에야스가 기후 성의 폐성을 결정한 데에는 기후 성이 산성이었던 점에 더해, 한때 이에야스 자신의 동맹이기도 했던 오다 노부나가가 일본 천하를 손에 쥘 의사를 밝히면서 명명했던 「기후」(岐阜)라는 지명을 이에야스는 불쾌해했기 때문에, 도쿠가와 씨를 몰아내고 다시금 일본 천하를 차지할 자가 다시는 나오지 못하게 하기 위한 의도였다는 해석도 존재하고 있다.
 
== 주석각주 ==
<referenc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