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오도로스 1세 라스카리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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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자=[[요안니스 3세 두카스 바타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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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로스 1세 라스카리스'''([[그리스어]]: Θεόδωρος Α' Λάσκαρις, [[1174년]] – [[1221년]])은 [[비잔티움 제국]]의 망명계승국 중 하나인 [[니케아 제국|니케아 제국의 황제]]였다. ([[1204년]]–[[1221년]]1204년–1221년).
 
== 생애 ==
테오도로스는 [[라스카리스 왕조|라스카리스 가문]] 출신으로,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귀족가문귀족 가문 출신이다. [[1199년]] 황제 [[알렉시우스 3세]]의 딸 안나 앙겔리나와 결혼하여 황제의 사위가 되었다. 테오도루스는 [[1204년]] [[제4차 십자군|프랑크 십자군 약탈자들]]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할 때 최후의 순간까지 도시의 방어에 힘쓰다가 도시가 무너지는 순간 아내와 함께 [[보스포루스 해협]]을 건너 [[소아시아]]로 탈출했다.
 
소아시아의 [[비티니아]]의 니케아에서 그는 비잔티움의 후계국을 세웠고 비잔티움 재건의 중요한 거점을 삼았다. 테오도루스는테오도로스는 처음부터 황제라고 칭하지 못했는데 [[1203년]]에1203년에 도망친 장인 황제 알렉시우스가 아직 살아있었고 [[라틴 제국]]의 위협이 눈앞에 직면해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니케아]]에는 대관식을 치뤄줄치러줄 [[총대주교|총대주교좌]]도 없었다. 테오도로스는 새로운 나라를 모두 비잔티움과 동일하게 만드는 데 노력했다. [[1206년]]에야1206년에야 그는 황제를 선포하였고 총대주교를 초청하여 [[1208년]]에1208년에 대관식을 치렀다.
 
초기에 그는 라틴제국에 패배를 거듭했는데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차르 [[칼로얀]]이 [[아드리아노폴리스]]에서 라틴 제국으제국을 물리치고 [[라틴제국의 보두앵 1세|황제 보두앵]]을 사로잡았다. 테오도루스는 [[칼로얀]]과 연합하여 라틴제국에 대항했다. [[1211년]] 테오도루스의테오도로스의 장인이자 전임황제 알렉시우스가 [[룸 술탄국]]의 [[술탄]] 카이코루스에게로 와서 테오도루스에게테오도로스에게 반기를 들고 자신의 황권을 주장했다. 술탄은 그해 봄 니케아의 영토로 침입하였고 테오도루스는테오도로스는 안티오케이아 근처의 전투에서 카이코루스 술탄을 죽이고 승리했다. 그러나 이 틈을 이용하여 라틴 황제 [[라틴제국의 앙리]]가 공격했고 [[10월 15일]] 테오도루스는테오도로스는 다시 참패했다.
 
[[1214년]] 테오도로스는 라틴 황제와 평화조약을 맺고 휴전에 들어갔고 영토를 공고히 하고 [[1219년]]에는1219년에는 앙리 황제의 조카 마리아와 결혼까지 했다. [[1220년]] 테오도루스는테오도로스는 다시 한번 라틴 제국을 공격했다.테오도루스는테오도로스는 [[1221년]] 11월 죽었고 니케아의 제위는 사위인 [[요안니스 3세 두카스 바타치스]]에게 돌아갔다.
 
== 가족 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