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슈르바니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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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
집권 이후 아슈르바니팔은 한동안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해야 했다. [[기원전 667년]] [[쿠시]]의 왕인 [[타하르카]]가 반란을 일으켰고 그는 아시리아군대를아시리아 군대를 보내어 [[멤피스 (이집트)|멤피스]]에서 곧 진압했고 타르하카는 쿠시로 도망갔다. 반란을 도왔던 이집트의 신하들은 모두 니네베로 붙잡아 왔고 반란은 철저히 진압당했다. 정복지에 그 지역 출신 왕을 세운다는 방침으로 아슈르바니팔은 이집트에 [[네코 1세]]를 왕으로 세우고 아시리아에 충성을 다짐받았다. [[기원전 664년]] 타하르카가 죽고 조카인 타누타카가 다시 이집트를 침범해 테베를 점령했다. 아슈르바니팔은 이번에도 군사를 보내어 반란을 진압하고 타누타카를 쿠시로 쫓아보냈다. 네코 1세는 전쟁중에 죽었으며 아시리아는 다시 [[프삼메티쿠스프삼메티코 1세]]를 이집트의 왕위에 임명했다. 나중에 아시리아 군대는 이집트에서 쫒겨나지만 무역은 계속 유지하였다.
 
아슈르바니팔은 이집트 반란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이집트를 도운 티레와 리디아를 징벌하고 아시리아의 영향력을 과시하였다.
 
한편 바빌론의 왕위에 임명된 샤마시 슘 샴슈-슈무-우킨과의 관계는 16년 동안 순탄했지만 샤마시는샴슈는 아시리아의 피지배민족과 연합하여 반란을 꾀했다. 음모를 발견한 아슈르바니팔은 곧장 바빌론 경고를 내리고 특별조공을 부과했으나 거절당했다. 아슈르바니팔은 곧바로 군사행동에 들어가 반란을 진압했는데 이 반란은 거의 3년을 끌었다. 바빌론은 포위된 상태에서 극도로 굶주려야 했고 사람이 서로를 잡아먹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648년]] 샤마시 슘 샴슈-슈무-우킨은 종말이 다가오자 불타는 자신의 궁전에서 자살했다. 아슈르바니팔은 도시를 재건하고 독립적인 지위를 다시 보장했지만 새로이 바빌론의 왕으로 임명된 칸달나우는 제의적인 왕의 역할만 허용했다.
 
그의 말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 없어 그가 언제 죽엇는지는죽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기원전 631년 또는 627년의 기록이 있음) 말년의 통치는 대체로 평온한 가운데 지냈던 것으로 보이지만 아시리아 제국은 점점 쇠퇴하고 있었다. 그는 아버지의 선례를 좇아 두명의 아들, [[아슈르 에텔 일라니]]와 [[신 샤르 이슈쿤]]에게 공평하게 권력을 나누어 공동으로 통치하게 했다.
 
==문화의 장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