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미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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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은 기원전 8세기경부터, 티베리스 강변에 가까운 파라티노의 언덕을 중심으로 일곱개의 언덕에 살며, 기원전 753년 공동체에 의한 도시국가 로마를 건국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로마는 일시 에트루리아의 지배 아래 놓였으나 기원전 6세기 초에 그들을 추방하였으며, 다시 인접 여러 나라를 제압하고, 기원전 3세기에는 이탈리아 반도 전역을 지배했다. 그 세력은 기원전 2세기 중엽에는 지중해 전역에 미쳤다. 로마 미술은 북방의 에트루리아 미술과 반도 남부의 그리스 식민도시 미술의 영향을 받아서 싹이 트고 발전한 것이다. 로마는 현실적·행동적인 요소를 에트루리아인으로부터 받아 계승하면서 그리스적 형식을 모방했다. 로마의 미술에서 보여지는 리얼리즘의 형태는, 신전 건축과 조각·회화 등에 있어서 그 형식을 그리스에서 찾으면서도, 그 정신에 있어서는 에트루리아적이다. 처음에는 에트루리아의 영향에서 출발했지만 공화정 말기 이후 헬레니즘 세계와의 접촉을 통해 얻은 그리스의 영향은 로마 세계를 풍미(風靡)하고 소위 '그레코로만(Greco­Romna) 시대'를 가져오게 했다. 기원전 2세기 후반에 그리스를 정복한 이래, 매우 많은 수의 그리스 조각이 로마로 운반되었다. 다수의 그리스 예술가가 로마에 초빙되어 그리스 명작을 모방했다. 청동의 원작은 대리석에 되새겼고, 그것들은 로마인의 취미나 헬레니즘 시대의 자연주의적인 경향으로 약간 변경되어 갔다. 회화에 있어서도 이 경향은 같아서, 폼페이의 벽화에도 헬레니즘 회화의 모방과 비속화(卑俗化)가 눈에 띈다. 로마시대에 개성적인 초상 조각이 발달하고, 거대하고 실용적인 공공 건축이 서로 이어서 건조된 것도 헬레니즘시대 정신과 에트루리아적 정신과의 융합의 결과이다. 로마 미술은 이 두개의 요소를 기반으로 하여 발전한 것으로서, 그 특징으로는 국가 권력에 수반하는 지리적 확대에 상응(相應)한 규모의 크기, 주제의 다양성, 사실성 등을 들 수 있다.
 
오이오이 믿고 있었다구
== 로마 건축 ==
{{본문|로마 건축}}
 
== 로마 조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