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전쟁 (프톨레마이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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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시리아 전쟁의 사료는 거의 상실되어 자세한 것은 여전히 불분명 남아 있지만, [[코스 섬 해전]]에서 안티오쿠스는 승리를 거두며 프톨레마이오스의 해군력은 괴멸 상태에 빠졌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시리아]], [[팜필리아]], [[이오니아]]에서 힘을 잃었고, 안티오쿠스는 [[밀레투스]]와 [[에베소]]를 손에 넣었다. [[안티고노스 왕조]]에 의한 안티오쿠스에 대한 도움은 [[코린트]]와 [[칼키스]]에서 반란이 일어나며 중단됐다. 이 반란은 프톨레마이오스에 의해 선동되어 일어난 것이었다.
 
[[기원전 253년]], 안티오코스는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화약을 맺고 [[프톨레마이오스 2세]]의 딸 베레니케 페르노포라스와 결혼했다. 그러나 [[기원전 246년]] 프톨레마이오스 2세가 죽고, 안티오코스는 이혼한 전처 라오디케 1세와 재결합했다. 베레니케와 라오디케의 갈등은 깊어졌고, 안티오코스 사후 왕위 승계 다툼 과정에서 라오디케는 베레니케와 그의그녀의 아들을 살해했다. 라오디케는 아들 셀레우코스 2세 카리니코스를 즉위시켰다. 베레니케가 살해되자 이집트의 새로운 왕 [[프톨레마이오스 3세]](베레니케의 형제남동생)는 분노했고, 이것이 제3차 시리아 전쟁([[기원전 246년]] – [[기원전 241년]])의 원인이 되었다.
 
==제3차 시리아 전쟁 (기원전 246년 ~ 기원전 24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