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전쟁 (프톨레마이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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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차 시리아 전쟁 (기원전 246년 ~ 기원전 241년)==
 
안티오쿠스안티오코스 2세가 죽은 뒤 후계자 문제로 전처 라오디케 1세와 베레니케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다. 각각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베레니케는 자신의 남동생인 [[프톨레마이오스 3세]]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전처 라오디케 1세가 먼저 베레니케와 아들을 살해했다.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보복으로 왕위를 이은 라오디케 아들 [[셀레우코스 2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하고 제3차 시리아 전쟁을 일으켰다.
 
시리아와 [[아나톨리아]] 전투에서 프톨레마이오스 3세는 많은 승리를 거두었고, 셀레우코스 왕조의 수도인 [[안티오크]]도 점령했다.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프톨레마이오스 군대는 [[바빌론]]까지 도달하고 있던 것 같다. 그러나 〈안드로스 섬 전투〉에서 [[안티고노스]]에 의해 [[키클라데스 제도]]를 빼앗기면서, 프톨레마이오스 3세의 명성은 손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