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전쟁 (프톨레마이오스):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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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사법의 부정부패와 백성의 불신 등으로 약화되었다. 당시 왕이었던 [[프톨레마이오스 4세]]는 더 이상 관리들에게 저항할만한 권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관리들은 자신의 절대적인 권력을 사적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안티오코스는 이집트의 혼란한 상황을 틈타, [[기원전 219년]]에 [[제4차 시리아 전쟁]]을 발발시켜 피에리아 지방과 [[페니키아도스]] 등을 탈환했다. 그러나 이집트에는 좀처럼 침략을 시작하지 않았다. 안티오쿠스는안티오코스는 탈환한 영토를 통합하면서도 [[페니키아]]에 머물면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외교적 제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동안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재상인 소시비오스는 군대를 모집하고, 훈련을 시작했다. 소시비오스는 그리스인뿐만 아니라 이집트인들도 병사로 모집해, 결과적으로 3만에 이르는 이집트인 중장보병 부대를 편성할 수 있었다. 이 새로운 부대를 이끌고 이집트 군은 안티오쿠스 군을 맞아 싸워, 80년전 〈[[이프소스 전투]]〉 이후 가장 대규모의 전투인 〈[[라피아 전투]]〉에서 승리를 장식했다. 이 승리로 안티오쿠스는안티오코스는 이집트로의 진출이 가로막혔다.
 
==제5차 시리아 전쟁 (기원전 202년 ~ 기원전 19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