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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전쟁 시기 ===
[[1950년]] 당시 김성칠과 그의 가족은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과거 [[경기도]] [[고양군]] [[숭인면]] 정릉리 362번지 손가장)에서 지냈는데, 이때 [[한국 전쟁]]을 겪게 된다. [[조선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하에서 이루어진 서울대학교 교원심사에서 파면 처리되며 집에서 농사와 목축에 열중했다. 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성인 남성을 [[의용군]]으로 강제 징용하는 등 사회 분위기가 험악하였으므로, 일을 그만두고 자택에 숨어 지내기도 했다. 동년 [[9월 28일]]에 [[대한민국 국군]]과 [[유엔사령부|유엔군]]이 서울을 수복하자 서울대학교 문리대의 심사를 거쳐 교수로 복직했으며, 12월에 국방부 정훈국 [[전사편찬위원회]]에서 제의를 받아 전사편찬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였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1.4 후퇴]]를 앞두고 시국이 어수선하여 [[부산광역시|부산]]으로 피난을 갔다. 김성칠은 서울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대한민국]]의 점령을 번갈아 목도하며 느낀 전쟁의 실태와 아픔을 일기로 기록했다. 이 일기는 [[냉전]]이 종식되고 통일에 대한 열망이 부풀어 오르던 [[1993년]]에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교수로 지낸 아내 [[이남덕]]과 [[계명대학교]] [[사학과]] 교수를 역임한 아들 [[김기협]]의 주도 아래 《[[역사 앞에서]]》라는 책으로 출판된다.<ref>{{웹 인용|title=사학자 남편의 「6·25일기」 발간한 고 김성칠 저 『역사 앞에서』낸 이화여대 교수 이남덕 씨|url=https://news.joins.com/article/2789496|accessdate=2020-07-15}}</ref><ref>{{웹 인용|title=반세기를 미워한 어머니와의 화해, 기막힌 가족사를 밝힙니다|url=https://news.joins.com/article/4977022|accessdate=2020-07-27}}</ref>
 
=== 사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