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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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대국에 대한 의존
1950년대 이래 유엔의 조직과 그 활동에 대해 논란과 비판이 있어 왔다. [[미국]]에서는 초기의 유엔 반대자였던 [[존 버치 협회]](John Birch Society)는 유엔의 목적은 "하나의 세계 정부"를 이루는 것이라며, 1959년 "UN에서 US(미국)을 몰아내라"는 캠페인을 전개했다. 1967년 [[리처드 닉슨]]은 미국 [[대선]] 중에 유엔을 당시 [[냉전]]과 같은 당면 문제를 해결하기에 "쓸모없고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로널드 레이건]]이 미국의 유엔 대사로 임명한 잔 커크패트릭(Jeane Kirkpatrick)은 1983년 [[뉴욕 타임즈]]에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의 토론 과정을 두고 정치적 논의나 문제 해결 노력보다는 미국의 "강도짓과
또한 총회에서 모든 나라가 찬성하더라도 [[상임이사국]] 다섯 나라가 반대한다면 그 의제는 부결된다. 그 중 미국과 러시아는 유엔의 의사 결정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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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티에서는 2010년 대지진 이후 평화유지군이 주둔했는데, 이때 네팔 부대가 쓰고 버린 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전 지역에 콜레라가 창궐, 7년간 9,500명이 사망했다.
하지만 반기문 사무총장은 이를 5년 동안 인정하지 않다가 2016년 12월 공식 사과했다.
3. 전쟁을 막아내지 못한 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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