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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호스'''({{llang|ru|колхо́з}})는 [[소련]]의 [[집단농장]] 체계이다. 당영농장인 [[솝호스]]와는 달리 반당반민 농장 형식을 띠고 있다. 콜호스는 콜렉티브노예 호자이스트보(коллективное хозяйство)의 [[러시아어]] 약칭으로서 '공동 경영', '집단 농장'이라는 뜻이다. 농업 콜호스 이외에 어업 콜호스, 임업 콜호스가 있다.
 
1917년 [[10월 혁명]]을 계기로 [[신분제]], [[농노제]], [[노예제]] 등이 폐지되면서 소련에서는 극심한 식량 부족 현상이 일어났다. 1928년 소련 정부가 발표한 [[이오시프 스탈린]]의 제1차 5개년 계획에 따른 농업의 집단화 정책을 계기로 도입되면서 소련 전국에서 콜호스가 조직되었다. 개인이 토지를 소유한 부농은 의무화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자발적 노동이라는 명목으로 참여했다. 1930년대 초반에는 급속한 집단화 정책에 반대하는 소요 사태가 일어나면서 여러 농민들이 체포되었다. 이를 계기로 콜호스는 개척지 등에 설립된 솝호스와[[솝호스]]와 함께 소련의 농업의[[농업]]의 기본 구조를 형성했다.
 
콜호스는 당유지를 무료로 사용하고 경작을 실시하는 형식을 띠었으며 이에 따라 부농을 의미하는 [[쿨라크]]가 일소되었다. 농기구나 가축 등은 집단화 하였으며 생산물은 당에 매각되었다. 각 개인의 주택에 부속된 소규모 농지에서 채소의[[채소]]의 재배, 가축의[[가축]]의 사육이 가능했고 개인이 생산한 생산물은[[생산물]]은 자유롭게 판매해도 되었다. 생산력 향상이 농민의 수입 증가에 직접 연결되는 이 자류지 재배는 집단농장보다 높은 효율성을 나타내서 취약한 소련 농업에 도움이 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 소련에서 공업화와 유통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식량을 자급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콜호스는 생산성 향상에 문제점을 드러냈다. 1985년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을 계기로 소련 각지의 콜호스에 독립채산권이 실시되면서 혼합 경제의 요소가 도입되었다. 1991년 [[소련의 붕괴]]를 계기로 독립한 구 소련 국가에서는 콜호스가 자발적으로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