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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죽은 후, 7살의 [[시종훈]](柴宗訓)이 뒤를 이었으나, 아직 어린 황제에 대해 불안을 느꼈던 군인들은 원정군의 사령관이었던 전전도점검(殿前都點檢; 근위군 사령관)인 [[조광윤]](趙匡胤)을 옹립했다. 한통과 수비군들을 처지하고 개봉에 입성한 [[조광윤]]은 공제([[시종훈]])로부터 선양을 받아 [[송나라]]를 세웠다. 일련의 사건을 [[진교의 변]]이라 부른다.
 
이로써 후주는 3대 만에 멸망했으나, 후주 가신들과의 협약으로 [[조광윤]]은 과거 자신의 스승이자 [[시종훈]]의 보호자로 신문열(辛文悅)을 임명하여, 후주 가신들에게 전임 황제를 살해할 의사가 없다는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 또한 [[시종훈]]이 병으로 인해 일찍 세상을 떠날 때 황제의 예우로 장례를 치뤄주었다치러주었다. [[조광윤]]의 유훈(遺訓)에 의해 [[시종훈]]의 자손은 [[남송]]이 멸망할 때까지 300년간 두터운 보호를 받게 되었다.
 
== 역대 황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