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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본부여(卒本夫餘)는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도읍지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유사]]》에서는 도읍지를 졸본이라 칭하고 졸본부여는 그 자리에 세워진 나라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도, 졸본부여의 왕이 [[고구려 동명성왕|주몽]]을 사위로 삼아 그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케 했다는 이설(異說)을 적어두고 있다. 〈백제본기〉에서는 위와 같은 내용이 아예 사실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덧붙여 《삼국사기》에서는 [[시조 비류설]]을 언급하면서, 졸본 지방의 유력자 [[연타취발]]이 주몽을 사위로 삼고, 주몽이 그 집안의 세력과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하여 그 지방의 다른 부족들을 제압하면서 고구려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가지 설화중 첫번째 설화만 정설로 인정 받는다.
* 졸본(Zolbon)은 인도유럽어로 촐폰(Chopon)으로 표기, 발성된다. 인도유럽어는 경음화가 이루어 짐에 자음 ㅂ이 ㅍ으로, ㅈ이 ㅊ으로, ㄷ이 ㅌ으로 발성된다. 이러한 이론은 비교언어학의 정설이다. 이 촐본은 키르기즈스탄의 이식쿨 호수 옆의 도시인 촐폰아타(Choponata)의 지명이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고토 회복을 위하는 '다물사상'에 의하여 건국한 것으로 원래 졸본 부여의 땅은 연타발(소서노의 아버지)족장의 땅이었다.
* 재야사학자인 정진만의 '21세기에 새로 조명하는 고대사 1권'에서 설명하고 있는데(ISBN 978-89-6798-049-8, 수서원). 이러한 주장은 부여가 만주권에서 형성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 '가섭원 부여' 의 위치에서 다시 한번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로 보아 졸본부여는 고구려의 전신 국가이거나 고구려의 별칭일 것이다. 그리고 이 때의 졸본부여는 고주몽이 건국한 기원전 37년의 고구려 이전에 많은 문헌에서 등장하는 고구려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졸본부여라는 이름은 고구려가 부여계의 국가임을 알 수 있는 증거이다.
 
동부여의 수도가 가섭원임. 동부여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 서술되어 있음. 기타 검증되지 않은 재야 사학계 주장 삭제.
=== 가섭원 부여 ===
가섭원 부여의 이름인 가섭은 우리 한글로 가서브, 가서비로 나누어지며, 다시 인도유럽어로는 카서프, 카서피(Caspi)로 변하여 발성된다.즉, 카스피 연안의 부여를 말함이다. '가섭'이란 말은 석가의 제자중 '가섭존자'가 있다. 역시 카스피를 말한다. 고고역사학 뿐만 아니라 이제는 비교언어학, 민족학, 인간유전학등 비역사적인 학문을 도입하여 역사를 통섭적인 시각에서 연구되어야 한다.(정진만) 가섭원의 '원'은 평야를 말함인데 졸본부여와 함께 카스피부여(가섭원 부여)가 모두 중앙아시아에서 건국한 셈이 된다
 
=== 남부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