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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본부여(卒本夫餘)는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의 도읍지 명칭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삼국유사]]》에서는 도읍지를 졸본이라 칭하고 졸본부여는 그 자리에 세워진 나라인 것처럼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서도, 졸본부여의 왕이 [[고구려 동명성왕|주몽]]을 사위로 삼아 그로 하여금 왕위를 계승케 했다는 이설(異說)을 적어두고 있다. 〈백제본기〉에서는 위와 같은 내용이 아예 사실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덧붙여 《삼국사기》에서는 [[시조 비류설]]을 언급하면서, 졸본 지방의 유력자 [[연타취발]]이 주몽을 사위로 삼고, 주몽이 그 집안의 세력과 자신의 능력을 기반으로 하여 그 지방의 다른 부족들을 제압하면서 고구려를 세우고 왕위에 올랐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가지 설화중 첫번째 설화만 정설로 인정 받는다.
* 졸본(Zolbon)은 인도유럽어로 촐폰(Chopon)으로 표기, 발성된다. 인도유럽어는 경음화가 이루어 짐에 자음 ㅂ이 ㅍ으로, ㅈ이 ㅊ으로, ㄷ이 ㅌ으로 발성된다. 이러한 이론은 비교언어학의 정설이다. 이 촐본은 키르기즈스탄의 이식쿨 호수 옆의 도시인 촐폰아타(Choponata)의 지명이다. 고구려는 고조선의 고토 회복을 위하는 '다물사상'에 의하여 건국한 것으로 원래 졸본 부여의 땅은 연타발(소서노의 아버지)족장의 땅이었다.
동부여의 수도가 가섭원임. 동부여에 대해서는 이미 위에 서술되어 있음. 기타 검증되지 않은 재야 사학계 주장 삭제.
=== 남부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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