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스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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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反)에스파냐 정책 ===
[[파일:메리 스튜어트의 재혼.png|섬네일|엘리자베스와 메리의 가계도]]
엘리자베스 1세는 잉글랜드의 국력이 [[프랑스]]나 [[에스파냐]]에 한참 못 미친다는 것을 알고, 표면적으로는 세력 균형 정책을 펴면서도 뒤로는 [[프랜시스 드레이크]] 등 해적들을 지원하여 에스파냐를 견제하였다.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네덜란드]]의 [[네덜란드 독립 전쟁|독립 전쟁]]에서는 개신교 국가인 네덜란드를 지원했다. 그 결과 가톨릭을 국교로 한 에스파냐와의 관계가 금이 가게 되었고, 그 이래로 두 나라는 숙명의 라이벌이 되었다.
 
그 무렵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자 [[로마 가톨릭]]교도인 [[스코틀랜드의 메리 1세|메리 스튜어트]]가 [[장로교]]를 믿는 귀족들의 반란으로 어린 아들인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제임스]]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1568년]] 잉글랜드로 망명하였다. 메리는 그 후 약 20년 동안 자신이 헨리 8세의 누나의 적손녀임을 내세워 엘리자베스 1세를 제거하여 영국의 왕위를 차지할 온갖 음모를 꾸몄다. 그러다가 마침내 엘리자베스 1세 암살 계획이 모의된 배빙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 [[1587년]] 2월에 메리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