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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재 이귀(李貴) 등은 용맹이 절륜하고 지혜가 뛰어나다고 평했다.
 
《[[임진기록]]》에서 김덕령이 올린 [[1594년]] 5월 11일자 장계에 따르면, “신은 그저 비장(裨將)으로서 선봉에 서서 돌격대의 임무를 맡았을 뿐인데, 이 고개를 넘은 직후 비로소 군에서의 명성을 떨치게 되었습니다.”라고 스스로 평하였다.{{sfn|임진기록|p=22180~23182}} 앞서 3월 2일 장계에서도 “신이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동지 몇 명을 불러모아 한 장수의 선봉이 되고자 하였을 뿐인데 뜻밖에 상께서 장수의 호칭을 내려 주시고 모여 있는 군사를 위무(慰撫)해 주시니 신이 감당할 수 없어 밤낮으로 두렵고 민망합니다.”라며 비슷하게 자평하였다.<ref name='h382067' /><ref name='kna_12703002_002' />
 
《[[서하집]]》권5에 따르면,<ref name='slwk' /> 김덕령의 성품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일찍부터 자부심이 강하고 비분강개하는 기질을 가졌으며, 풍모는 그다지 장대(長大)하지는 않았으나, 용맹이 아주 뛰어나고 날렵하였다. 속으로 큰 뜻을 품고 있었으나,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서 사람들 가운데 이를 아는 자가 드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