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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초에 조정에서는 1593년 12월 27일 전주 무과시험 합격자 등을 김덕령의 군대에 합류시켜, 김덕령의 군대는 관군과 의병의 연합부대 성격을 띈다.<ref name='h381586' />{{sfnp|김영헌|2006|p=138|ps=: {{harvtxt|오수열|황태섭|2014|p=6}}에서 재인용.}} 김덕령의 군대는 경상도 함양에 도착하여 도원수 권율 막하에 가서 도착 보고를 하고 왜적을 토벌할 계책을 논의했다.<ref name='h381586' /> 조정에서는 김덕령에게 진해·고성의 경계에 머물면서 경상도 거제, 진해, 함안 등지에서 노략질하는 일본군을 방어하도록 전교를 내린다.<ref name='h382067'> [http://www.honam.co.kr/detail/etc/382067 호남정신 뿌리찾아-77. 충용장 김덕령, 팔도 의병 총수 되다 - 광주 충장사] 무등일보, 2012.06.20. </ref>
 
[[음력 2월 2일|2월 2일]] 경상도 [[산음현]]의 [[환아정]](換鵝亭)에서 머물렀다. 3일에는 함안 부근 남산리(오늘날의 [[함안군]] 장지리·사내리 일부)에 도착해 산정에 가시나무 울짱을 두고 진을 쳤다.
{{sfn|임진기록|p=2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