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혁: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편집 요약 없음
태그: m 모바일 웹
40번째 줄:
 
== 이력 ==
[[1969년]] [[7월 10일]] 출생으로 그는 타격 폼이 마치 만세를 부르는 것과 같아서 붙여진 ‘만세 타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사실 만세 타법은 야구 교본에도 실려 있지가 않은 실로 창의적 타법이며, 이를 사용한 선수는 양준혁이 세계 최초이다.<ref>더욱이, 메이저 리그에서 희한한 폼으로 타격하는 선수들조차 이런 폼을 생각 조차 해보지 않았다고 한다.</ref> 프로 야구 선수 시절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대표적인 프랜차이즈 스타로 군림했고 '''양신'''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ref>최훈 Naver 카툰 스포츠 - 2010년 9월 기사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223&aid=0000000421 "프로 야구 카툰 - ‘양신’을 떠나보내며"]</ref>
 
[[영남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1992년]] [[삼성 라이온즈]]가 [[김태한 (야구인)|김태한]]을 1차 지명하면서 [[쌍방울 레이더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게 되었지만 입단을 거부하고 [[상무 피닉스 (야구)|상무]]에 입대하였다. 병역 결정을 위한 신체검사 당시 보충역으로 판정을 받으면서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전역하게 되었다. 방위 복무 전역 이후 [[1993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 이 시기부터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데뷔 첫 해에 타율 0.341로 [[한국 프로 야구 수위 타자|타격왕]]에 오르고, [[이종범]]과의 경쟁 끝에 신인왕에도 올랐으며, [[KBO 리그]] 사상 신인으로서 타격왕을 차지한 유일한 선수이다. 그해 130안타를 시작으로 [[2008년]]까지 16년 연속 100안타 기록을 달성했고, [[1996년]](151안타)과 [[1998년]](156안타)에는 최다 안타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2년]], [[2005년]], [[2008년]], [[2010년]] 시즌을 제외하고는 모두 3할이 넘는 타율을 기록해“배트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ref>2001년, 양준혁이 9년 연속 3할을 치자 팬들과 여러 야구 선수들 사이에 불리게 되었다. 이것이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도 양준혁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 [[장효조]]도 배트를 거꾸로 잡고 쳐도 3할이라는 소리를 들었었다.</ref> 이라고 불리기도 했다.<ref name="obbest">[[일간 스포츠]] - 2010년 4월 기사 [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372186 "OB의 재구성 - 삼성 역대 최고 타선"]</ref><ref>1994년 양준혁의 타율은 2할 9푼 9리 7모로, 모 단위를 사사오입하여 3할로 표시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3할 타율을 넘지 못하였다.</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