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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프로코프는 [[헝가리]]와 독일 방면으로의 후스파 원정에서도 지도자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1429년에 보헤미아 후스파 군세는 [[작센]]과 [[누렌베르크]]를 침공했다. 하지만 후스파는 독일 영토를 영구 점령하려 시도하지 않았고, 프로코프는 1430년 2월 6일 [[프리드리히 1세 폰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과 [[쿨름바흐]]에서 조약을 맺었다. [[신성로마황제]] [[지기스문트]]와 바젤 공의회가 후스파와 협상에 나서자 당시 생존 중인 후스파 지도자 중 가장 저명했던 프로코프가 바젤로 출발해 1433년 1월 4일 도착했다. 하지만 협상은 성과가 없었고 프로코프와 다른 사절들은 보헤미아로 돌아갔다.
 
프로코프가 이끄는 급진 후스파와 일부 온건파는 가톨릭이 점유 중인 [[플젠]]을 공격했다([[플젠 공방전 (1433년-1444년1434년)|플젠 공방전]]). 하지만 타보르파는 오랜 전쟁으로 지쳐 있었고, 플젠 근교에 진을 친 타보르파가 프로코프에게 항명하여 프라하로 돌아가 버렸다.
 
타보르파의 내부 분열에 탄력을 받은 가톨릭과 양형영성체파는 강경파인 타보르파를 몰아내기 위한 동맹을 맺었다. 동맹군이 프라하를 공격해 오자 프로코프는 방어에 실패했고, 플젠을 계속 공격 중이던 소 프로코프와 합류해 프라하를 버리고 동쪽으로 후퇴했다. 그러다 5월 30일 [[코우림]]과 [[콜린 (체코)|콜린]] 사이에서 귀족들의 군세와 조우했고, 타보르파는 결정적으로 패배했다([[리파니 전투]]). 이 전투에서 대·소 프로코프는 모두 전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