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진 (1946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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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되돌려진 기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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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국가대표팀 [[포수]]로서 이름을 알렸다.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제일은행]]을 거쳤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1977년]]부터 [[1978년]]까지 모교의 감독을 역임하였지만 물러나고 잠깐 야구계를 떠나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제일은행]]의 평범한 은행원으로 7년 간 종사했다.
 
이후, [[1984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영입되어 [[김영덕 (야구인)|김영덕]], [[박영길 (야구인)|박영길]] 감독을 보좌하였으며보좌하였는데 [[1988년]]당시 시즌삼성은 본인 뿐 아니라 [[박영길 (야구인)|박영길]] 감독 후임 물망에 한때 거론됐으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감독직을 고사했고 그 대신 [[백인천]] 전 삼미롯데 플레잉코치를 추천했지만 구단의 반대로감독을 무산됐으며타격코치<ref>{{뉴스 인용
| 제목 = 朴永吉(박영길)감독 三星(삼성)코치로
| url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4011300329208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4-01-13&officeId=00032&pageNo=8&printNo=11782&publishType=00020
| 출판사 = 경향신문
| 저자 =
| 쪽 =
| 날짜 = 1984-01-13
| 확인날짜 = 2020-08-09
}}</ref>, 원래 [[MBC 청룡]]에서 투수코치를 맡았으나 [[김동엽 (1938년)|김동엽]]이 [[1983년]] 5월 감독으로 부임하자 야구 철학이 다르다는 이유로 같은 해 6월 9일 팀을 떠난<ref>{{뉴스 인용
| 제목 = 청룡팀 감독대행 유백만씨 사표내
| url = https://news.joins.com/article/1697342
| 출판사 = 중앙일보
| 저자 =
| 쪽 =
| 날짜 = 1983-06-10
| 확인날짜 = 2020-08-09
}}</ref> [[유백만]]을 같은 달 27일 투수코치<ref>{{뉴스 인용
| 제목 = 삼성의 투수코치로 유백만 전청룡코치
| url = https://news.joins.com/article/1700136
| 출판사 = 중앙일보
| 저자 =
| 쪽 =
| 날짜 = 1983-06-28
| 확인날짜 = 2020-08-09
}}</ref>, 박창용 대구상고 감독을 2군 코치로 영입하면서 코치들의 수가 늘어면서 발생할 수 있는 코치들간 알력 다툼을 막고 선수들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본인(정동진)을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그 뒤, [[유백만]] 투수코치가 [[1985년]] 1군-2군을 별도로 분리함에 따라 2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긴 데다<ref>{{뉴스 인용
| 제목 = 「타석」에 들어선'85프로야구 國內外(국내외)서 힘찬「스윙」
| url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21300209209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2-13&officeId=00020&pageNo=9&printNo=19497&publishType=00020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 쪽 =
| 날짜 = 1985-02-13
| 확인날짜 = 2020-08-09
}}</ref> 다음 해 MBC로 돌아오자 한동안 투수코치까지 겸임했으며 삼성은 이 같은 부담감을 덜기 위해 원년 개막전 선발투수 [[황규봉]]을 [[1986년]] 시즌 뒤 투수코치로<ref>{{뉴스 인용
| 제목 = 삼성 황규봉, 코치로
| url = https://news.joins.com/article/2076459
| 출판사 = 중앙일보
| 저자 =
| 쪽 =
| 날짜 = 1986-11-27
| 확인날짜 = 2020-08-09
}}</ref> 승격시켰다.
이후, [[1988년]] 시즌 뒤 [[박영길 (야구인)|박영길]] 감독 후임 물망에 한때 거론됐으나 경험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감독직을 고사했고 그 대신 [[백인천]] 전 삼미 플레잉코치를 추천했지만 구단의 반대로 무산됐으며<ref>{{뉴스 인용
| 제목 = [삼성라이온즈18년 .4] 정동진감독
| url = https://www.yeongnam.com/web/view.php?key=19990305.00000009.00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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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확인날짜 = 2020-03-22
}}</ref> 삼성 감독을 맡을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1989년]]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전력이 약화된 팀을 4위까지 올렸고,올렸으나 [[1990년]]에도 정규기대를 시즌 4위로 마감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그동안 번번이 삼성의 우승을 가로막았던 난적이적생 [[해태 타이거즈최동원]] 3연승으로고작 스윕하고1승에 [[1990년그친 한국시리즈]]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데다 [[1990년성준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에게 스윕을 당해 우승에 실패하여 [[삼성 라이온즈(야구인)|삼성성준]] 고질병이었던김훈기 [[한국시리즈]] 징크스를선수의 다시부상으로<ref>{{뉴스 한 번 확인해 주었다.(이 징크스는 [[2002년 한국시리즈|2002년]]에 깨졌다.)인용
| 제목 = 프로야구 '89大長征(대장정) (4)
| url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9040500329211003&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89-04-05&officeId=00032&pageNo=11&printNo=13393&publishType=00020
| 출판사 = 경향신문
| 저자 =
| 쪽 =
| 날짜 = 1989-04-05
| 확인날짜 = 2020-08-09
}}</ref> 투수력이 붕괴되어 준플레이오프에서 대구 2차전만 승리했을 뿐 인천 원정(1차전 3차전)에서 패배하는 수모를 겪었다.
게다가, 원년 선수 출신의 코칭스태프가 경험 부족으로 본인(정동진 감독)을 보필하기 어렵다고 구단 측에서 판단하여<ref>{{뉴스 인용
| 제목 = 90년대 승리 향한 포석 끝냈다|8개 구단 지휘부 개편 거의 완료
| url = https://news.joins.com/article/2411129
| 출판사 = 중앙일보
| 저자 = 권오중
| 쪽 =
| 날짜 = 1989-11-14
| 확인날짜 = 2020-08-09
}}</ref> [[유백만]] 전 MBC 감독을 [[1989년]] 시즌 후 수석코치로 영입하기도 했다.
그 뒤, [[1990년]]에도 정규 시즌 4위로 마감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그동안 번번이 삼성의 우승을 가로막았던 난적 [[해태 타이거즈]]를 3연승으로 스윕하고 [[1990년 한국시리즈]]에 올리는 데 성공했으나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쓸만한 좌완 선발투수가 [[성준 (야구인)|성준]] 밖에 없어<ref>{{뉴스 인용
| 제목 = 프로야구'90패권 수비·주루플레이에 달렸다
| url =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0101800329210001&editNo=3&printCount=1&publishDate=1990-10-18&officeId=00032&pageNo=10&printNo=13867&publishType=00020
| 출판사 = 경향신문
| 저자 = 박건만
| 쪽 =
| 날짜 = 1990-10-18
| 확인날짜 = 2020-08-09
}}</ref> [[윤덕규]] [[김상훈 (1960년)|김상훈]] 등 좌타자가 대거 포진한 [[LG 트윈스]]에게 스윕을 당해 우승에 실패하여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고질병이었던 [[한국시리즈]] 징크스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이 징크스는 [[2002년 한국시리즈|2002년]]에 깨졌다.)
아울러,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 실패의 책임 뿐 아니라 사생활 문제로 물의를 일으켰던 [[황규봉]] 1군 투수코치의 2군행을 요구한 편송언 사장과의 마찰 탓인지<ref>{{뉴스 인용
| 제목 = [삼성라이온즈18년 .4] 정동진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