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샤파 1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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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애 ==
그의 아버지는 본래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불교|불교도]] [[군벌]] [[정치가]]였던 [[다투세나]] 장군(Dhatusena 將軍)이었는데 그의 아버지 [[다투세나]]는 그가 4세 시절이던 [[452년]]에 [[아누라다푸라 왕국]]에서 [[쿠데타|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당시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드라비다 6군주|피티야 군주]](Pithiya 君主)를 시해하였고 그후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집정관|집정총독]](執政總督) 직위에 취임함으로써 [[452년]]부터 [[455년]]까지 3년을 [[집정관|집정총독]] 직위에 재임하였으며 [[455년]]에는 [[대공|대공(大公)]] 보위에 즉위하여 [[455년]]부터 [[463년]]까지 8년을 [[대공]]으로 재위하였더니 [[463년]]에는 정식 왕으로 즉위하여 [[모리야 왕조]]를 개창하였다. 그리고 465년 카샤파 왕자 그가 17세 시절 부왕 [[다투세나]] 군주는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육군총장군 전역을 하여 군벌 일선에서는 일단 일보 물러났다.
그 또한 자신의 부왕(父王)인 [[다투세나]] [[국왕|군주]](Dhatusena 君主)의 기벽(奇癖)을 이어받았는지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왕자]](王子)가 되고 나서부터는 점점 자라면서 권력에 눈이 먼 '''[[아누라다푸라의 카샤파 1세|카샤파 왕자]]'''가 자신의 군사 병력을 증강하더니 급기야는 [[473년]]에 [[쿠데타|왕실 쿠데타]]를 일으켜 아버지 [[다투세나]] [[군주]]를 시해하고 [[473년]]부터 [[479년]]까지 6년을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대리청정|대리집정]](代理執政)으로 있다가 [[479년]] [[아누라다푸라 왕국]]의 새로운 군주인 '''카샤파 1세'''로 보위에 올랐으나 치세 기간 동안 자신의 이복 아우 [[모갈라나 1세|모갈라나]] [[왕자]](Moggallana 王子)가 복수를 할 것이 끝끝내 두려운 나머지 바위산 꼭대기에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궁전|왕궁]]을 지었는데 이 왕궁은 현재 [[스리랑카]]에서 [[문화재|우수 문화재]]로 기념되고 있지만 그 시절 [[아누라다푸라 왕국]]
=== 사후 ===
[[495년]]에 [[아누라다푸라의 카샤파 1세|카샤파 1세]] [[국왕|군주]]가 향년 47세로 자살 승하하고 난 직후 거병 개입에 성공한 이복 아우 [[모갈라나 1세|모갈라나 왕제]](Moggallana 王弟)가 [[495년]]
== 직계 친척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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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5세기 아시아 사람]]
[[분류:쿠데타로 집권한 지도자]]
[[분류:쿠데타로 축출된 지도자]]
[[분류:작전 중 사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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