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복군총영: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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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군총영'''은 1920년대 상해 임시정부의 군사기관이었다.
 
3.1운동 이후 만주에서 독립군 조직이 급속히 늘어났다. 1919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북간도와 북만주지역에 대한국민회와 북로군정서 등이 활동하였고, 서간도 지방에서 서로군정서 등이 활동하는 등 모두 46개 정치군사단체들이 등장했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1920년 만주에 파견한 최동오는 독립군 단체가 모두 22개나 되고, 무장 군인이 약 2,000명을 넘는다고 보고했다.
 
대한광복군총영은 1920년대 임시정부의 직속기관으로 독립전쟁을 펼치고 있던 유일한 단체였다. 대한광복군총영은 1920년 5월 7일 상해에서 [[안창호]]·[[김희선 (1875년)|김희선]]·이탁 등이 논의를 시작하여, 6월 남만주에서 [[대한독립단]]과 대한청년단연합회의용대가 합쳐 결성되었다.
 
광복군총영은 국경을 넘어 국내진공작전을 펴기도 하고, 일제 기관들을 파괴하거나 일본인과 친일분자를 응징하면서 독립자금을 모집하거나 병력을 확보하는 데도 힘썼다. 임시정부가 국내를 목표 지점으로 삼아 펼친 군사 활동에는 [[주비단]]과 [[의용단]]이 있었다. 주비단은 국내에서 단원모집과 군수품 확보 및 모험 공작을 벌이는 데 목적을 두었다. 주비단이 독립전쟁을 준비하는 조직이라면, 의용단은 전쟁을 대비하여 준비태세를 갖추기 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졌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김석황은 국내로 잠입하여 곳곳에 의용단 지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ref>{{저널 인용
|url=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128507
|제목=<새연재> 임영태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의 역정’(3) 상하이 임시정부 ②
|출판사 =통일뉴스
|날짜=2019.04.23}}</ref>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