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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여부 의심|날짜=2015-10-2}}
'''이집'''(李集, [[1327년
충목왕 때 과거에 급제하였다. 공민왕 17년([[1368년]])에 신돈의 미움을 사 생명의 위협을 받자 영천으로 도피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공민왕 20년(1371년)에 신돈이 죽자 개경에 돌아와 판전교시사(判典校寺事)에 임명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여주 천녕현(川寧縣)에서 시를 지으며 일생을 마쳤다. [[조선]] 개국 후 판전교시사(判典校侍事), 참의(參議)를 역임한 동료인 [[방순]](方恂)과 함께 숯골에
그의 시에는 꾸밈과 우회보다는 직서체에 의한 자연스럽고 평이한 작품이 많다. 그는 당시 임심문(任深文)을 비롯한
{{토막글|한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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