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오케 문제"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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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오케 문제''' 또는 '''필리오케 논쟁'''은 [[기독교]]의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수록된 [[삼위일체]]에 관한 [[교리]] 논쟁으로, 시작은 [[로마교회]]([[서방교회]])의 번역문제에서 시작되었다. 즉 성령의 정의에 대해 '성부와 성자에게서(Filioque) 발하시고' 라고 번역한 라틴 문구가 문제의 핵심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의도된 의역은 아리우스파를 견제하기 위한 일이었고<!-- 아리우스파의 경우 피조물 중 으뜸이라 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반신적 존재라 여겼을 뿐 완전한 신으로 보지 않았다. 때문에 하느님의 영인 성령이 성부 뿐만 아니라 성자로부터 같이 발하신다는 문구로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 초기에는 별 신학 논쟁으로 번지지 않았다. 그러나 후에 이 필리오케 신경이 퍼져나가자 로마대주교(교황) [[레오 3세]]는 그렇지 않아도 동서의 권력다툼으로 번져가던 교회의 대립을 억제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고 [[헬라어]] 원문을 따르는 방향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9세기 들어 니콜라오 1세가 보편교회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불가리아에 필리오케 신경을 도입하면서 동/서방 교회의 관계가 악화일로에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포티오스는 867년에 콘스탄티노폴리스 회의를 열어 니콜라오 1세를 파문하였다. --> 이로 인해 [[기독교]] [[신학]]의 주요 쟁점 가운데 하나가 되었고, [[11세기]] 이후 상호 파문으로 인해 동서 교회가 분열되는, [[교회 분열]]의 빌미가 되었다. 그후 13세기와 15세기에 동서방교회의 재결합을 논하는 공의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졌으나 끝내 일치를 이루진 못하였다. 1874년과 본과 1912년 페테르스부르크에서 [[로마교회]]와 [[정교회]], [[성공회]] 간에 이 문제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졌지만 합의를 이루진 못하였다.
 
== 역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