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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 = [[백제의 역대 국왕|백제의 제13대 어라하]]
}}
'''근초고왕'''(近肖古王, [[300년대]] 초?~[[375년]], [[11월]] <small>재위:</small> [[346년]] [[9월]]~[[375년]] [[11월]])은 [[백제]]의 제13대 국왕이다. 이름은 중국의 《[[진서|진서(晉書)]]》에 의하면 여구(餘句)<ref>「진서」의 열전에는 이른바 「백제전」은 없고, 백제왕 여구의 이름을 볼 수 있는 것은 「진서」권 9·[[간문제 (동진)|간문제]]기·[[함안 (동진)|함안]]2년(372년) 정월조 및 6월조이다.</ref>, 일본의 《[[고사기]]》에는 조고왕(照古王)<ref>{{서적 인용 |제목=고사기 | 저자 = 오노 야스마로 | 연도 = 712 |장 = 中卷-6 應神天皇 | 인용문 =亦百濟國主照古王、...|url= http://www.seisaku.bz/kojiki/kojiki_13.html }}</ref>, 《[[일본서기]]》에는 초고왕(肖古王)등의 이름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録)》에는 속고왕(速古王)으로도 불린다.
 
근초고왕은 마한 54개 연맹체 중 하나였던 백제국이 차츰 부족국가로서의 면모를 갖출 무렵 [[백제 비류왕|비류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체격이 컸기 때문에, 둘째 아들임에도 346년 [[백제 계왕|계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근초고왕은 남으로 전라도 지역까지 [[마한]] 연맹체를 부분적으로 통일하였고, 북으로는 평양성을 공격하여 [[371년]] 고구려의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 생애 ==
=== 왜국 교류 ===
근초고왕은 왜의 [[야마토 왕조]]와 국교를 수립하고 [[칠지도]](七支刀)와 칠자경(七子鏡)을 하사했다선물하였다. 백제가 언제부터 야마토 왕조와 수교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근초고왕에 이르러 양국 관계가 활기를 띤 것만은 분명하다.<ref group="주">이 일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엔 전무하고,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전한다. 현재 남아있는 《[[삼국사기]]》백제본기에는 근초고왕 즉위부터 20년(365)까지의 기록이 빠져 있다. 때문에 그 사이에 근초고왕이 무슨 일을 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ref> 364년, 근초고왕은 가야의 부족국가 가운데 하나인 [[탁순국]](위치 미상)에 사신을 파견하였으며, 366년 3월에는 사신을 보내 [[신라]]와 동맹을 맺고, [[탁순국]] 왕을 통해 [[야마토 왕조]]와 외교관계를 수립하려 하였다. 당시 야마토 왕조는 탁순국에 사신 시마노스구데를 파견하였다가 백제가 왜와 통교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자 시마노스구데는 근초고왕에게 부하 니하야를 파견하였다. 근초고왕은 니하야를 반갑게 맞이하여 오색의 채견 1필, 각궁의 화살, 그리고 철정 40매를 선물로 안겨 돌려보냈으며, 이듬해 367년 신라 사신 편에 구저(久氐), 미주류(彌州流), 막고(莫古)를 딸려보냈다.<ref group="주">막고(莫古)는 《[[삼국사기]]》 백제본기 근구수왕 조에 나오는 [[막고해]]와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ref><ref>{{서적 인용 |제목= 한권으로 읽는 백제왕조실록(증보판) | 저자= 박영규 |연도= 2004 |출판사=웅진닷컴 |쪽=140~141|id={{ISBN|89-01-04751-9}}|인용문= 백제가 언제부터 왜와 통교하고 있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근초고왕에 이르러 양국 관계가 활기를 띤 것만은 분명하다. 이 일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엔 전무하고,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전한다. 백제와 야마토 왕조의 국교 수립은 신공황후 46년(서기 366년)에 이뤄졌다. 당시 야마토 왕조는 탁순국(위치 미상)에 사신 시마노구스데를 파견하였다가 백제가 야마토와 통교하기를 원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자 시마노스쿠네는 근초고왕에게 부하 니하야를 파견하였다. 근초고왕은 니하야를 무척 반갑게 맞이하여 많은 선물을 안겨 돌려보냈으며, 이듬해 신라 사신 편에 구저(久氐), 미주류(彌州流), 막고(莫古) 등 세 사람을 딸려 보냈다(이 세 사람 중 막고는 『삼국사기』「백제본기」근구수왕 조에 나오는 막고해와 동일 인물로 추정된다.) }}</ref> 이들이 함께 왜에 도착함으로써 백제와 야마토 사이에 국교가 수립되었다. 한편 근초고왕은 신라를 존경하여, [[368년]] 백제에서 가장 뛰어난 명마 두필을 신라에 선물하기도 했다.
 
=== [[고구려]]와의 마찰 ===
[[369년]] 9월, 고구려 [[고구려 고국원왕|고국원왕]]이 군사 2만을 이끌고 치양성([[황해도]] [[배천군]], 구모로성)에 쳐들어왔다. 그러자 근초고왕은 태자 [[근구수왕|근구수]]를 보내 고구려군을 크게 무찌르고 고구려군 5천여 명을 사로잡았다. 《[[삼국사기]]》에는 이때 고구려로 도망쳤다가 마음을 고쳐 돌아온 백제인 [[사기]](斯紀)가 제공한 고구려의 군사정보 덕분에 태자가 고구려군을 격퇴할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371년에는 근초고왕이 태자 근구수와 함께 패수([[예성강]]<ref>패수는 특정한 강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국경]]의 강'을 가리키는 일반명사이다. 위의 치양성에서 알 수 있듯이 백제와 고구려의 국경은 [[예성강]]이었고, 예성강이 두나라 사이의 패수였다. [[대동강]]은 [[삼국통일]] 이후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국경이었고, [[통일신라]]의 패수였다.</ref>)에서 고구려군을 물리치고 옛 [[대방군|대방]](현 [[황해도]]) 대부분의 지역을 점령하였고, 이어 여세를 몰아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켰다. 고려의 신라계 대학자 [[김부식]]의 《삼국사기》 백제 개로왕본기에는 개로왕이 북위(北魏)에 보낸 표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때 태자 근구수가 고국원왕의 목을 베어 창에 꽃아 효수하였다 한다.
 
백제국은 지금의 [[마한전라도]]에 퍼져있던 마한 54개 부족국가 연맹체를 상당히 통일한 것은 물론, 고대 부족국가의 기반을 마련했다. 근초고왕은 이러한 영토 확장을 기반으로 마한의 패권을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왕위의 부자 세습 제도를 확립하였다.
 
=== 외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