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스쿠 다 가마: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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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캘리컷 ===
[[파일:A chegada de Vasco da Gama a Calicute em 1498.jpg|썸네일|캘리컷에 도착한 바스쿠 다가마]]
드디어 원정대가 1498년 5월 20일 캘리컷(Calicut)에<ref>캘리컷(Calicut)은 옛 지명이고 현재는 코지코(Kozhikode)드라 불리고 있다. 인도 남서부 말라바르 연안의 케랄라주(州)에 있는 도시이다.</ref> 도착했다. 리스본을 떠난지 316일(10개월 12일)만에 일이였다. 캘리컷은 인도양에 있는 무역항들 중에 큰 번영을 누리고 있던 무역도시중 하나였다. 바스코 다가마는 캘리컷의 힌두 통치자 자모린(Zamorin)<ref>K. V. Krishna Iyer, "The Importance of the Zamorins of Calicut", Proceedings of the Indian History Congress, 37 (1976), pp. 252–259...캘리컷의 통치자를 칭하는 명칭, 직책을 이르는 말이다. 세습 군주이며 왕(King)이라 볼 수 있다. 이 호칭은 1342년 이븐 바투타의 글에 처음 등장한다.</ref>을 만나서 무역을 청했다. 그러나 그곳 상권을 주도하고 있던 이슬람 상인들의 방해로 통상조약을 체결하지는 못했다.<ref>[네이버 지식백과] 캘리컷 (스페인·포르투갈사, 2005. 7. 15., 강석영, 최영수, 위키미디어 커먼즈).....캘리컷은 인도의 가장 큰 무역항들 중의 하나였다. 바스코 다 가마는 그 곳의 통치자인 사모링과 우호와 교역을 위한 조약을 맺으라는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협상을 벌였으나 매우 어려웠다. 왜냐 하면, 인도 영해 내의 상권을 독점하고 있던 아랍 인들이 포르투갈 인들의 계획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자신들이 오랫동안 누리고 있었던 특권을 포르투갈 인들이 약탈해 가는 행위였고, 또 그들이 교역하는 베네치아나 이집트 인들에게도 큰 타격을 주는 심각한 문제였다. 그러한 이유로, 아랍 인들이 양국 사이를 이간질한 결과 사모링 왕의 명령으로 포르투갈 인들은 추방당하고, 안제디바(Angediva)에서 급수와 수선을 위해 잠시 지체한 다음, 1498년 7월 10일에는 귀국을 결심했다.</ref>
 
포르투갈에서 가져간 물건들은 현지인들이 보기에는 조악한 수준의 상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그들의 흥미를 전혀 끌지 못했다. 더불어 이슬람 상인들의 적대감은 상상 이상이였다. 포르투갈인들이 지나가면 상인들은 바닥에 침을 뱉으며 "포르투갈!, 포르투갈!"이라고 외치곤 했다.<ref>윌리엄 번스타인 <무역의 세계사> 라이팅하우스 2019.4.10 p267</ref> 오래 머무를 분위기가 아니였기에 향신료등을 구입한후 도착한지 3개월만인 8월말에 서둘러 귀국길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