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스 옐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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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코소보 전쟁]]이 일어난 동안 옐친은 [[유고슬라비아]]에 대항하는 [[나토]]의 군사 활동 운동을 강하게 반대하였고, 만약 나토가 코소보로 지상군을 배치시킨다면 가능한 러시아의 개입에 관하여 경고하였다.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소감들에서 그는 "난 나토, 미국인 그리고 독일인들에게 말하였다. 우리를 군사 행동으로 밀어넣지 말아라. 아니면 거기에는 확실히 유럽 전쟁, 그리고 가능하게 세계 대전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그해 [[5월 15일]] 옐친은 또다른 탄핵 시도로부터 생존하였는데 이번에는 두마에서 자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야당에 의해서였다. 그는 벨라베자 협정의 조인, 소련의 해산해체 및 붕괴(1991년 12월), 쿠데타 무력진압(1993년 10월)와 체첸 전쟁의 개시를 포함한 몇몇의 비헌법적 활동들과 함께 고발되었다. 이 고발들 중 아무것도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조사 분석하는 데 요구된 두마에 의한 3분의 2의 다수를 받지 않았다.
 
[[8월 9일]] 옐친은 자신의 총리 [[세르게이 스테파신]]을 해고시켰고, 4번째로 자신의 전체 내각을 해고시켰다. 스테파신의 자리에 그는 당시 비교적 알려지지 않은 [[블라디미르 푸틴]]을 임명하여 자신의 후임자로서 푸틴을 보는 데 자신의 희망을 공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