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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예맥'''(濊貊)은 고대 동북아시아의한민족의 민족명으로종족명으로, [[한반도]] 북부와 중국 [[둥베이만주]]에 걸쳐 살던 민족이다[[한민족]](韓民族)의 근간이 되는 민족 중 하나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여전히 이에 관한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고 있다.

예(濊)와 맥(貊)을 갈라 보는 견해에서는 예족은 요동과 요서에 걸쳐 있었고 맥족은 그 서쪽에 분포하고 있다가 [[고조선]] 말기에 서로 합쳐진 것이라고 보며, 예맥(濊貊)을 단일종족으로 보는 견해에서는 예맥은 고조선의 한 구성부분을 이루던 종족으로서 고조선의 중심세력이었다고 본다.<ref name="예맥족">한국민족문화대백과(한국학중앙연구원 편집) 참조</ref>
 
== 역사 ==
예맥은 맥(貊·貉) 또는 예(濊·穢·薉)로도 불렸는데, 서쪽으로는 [[동호 (민족)|동호]](東胡), 동쪽으로는 [[숙신]](肅愼)과 접해 있었다.
 
예맥은 기원전 2~3세기 경부터 현대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과 [[지린성]] 일대의 [[송화강]], [[압록강]] 유역에서유역과 발흥하여, 이후 차츰 [[북한]]동해안 일대([[한반도]]의 [[평안도]]·[[함경도]]·[[강원도]]), 만주의 [[랴오닝 성]]과 [[지린 이주하였다성]])에 걸쳐 정착하며 활동한 대민족으로 추측된다. [[부여]](扶餘)·[[고구려]]·[[옥저]]·[[동예]] 등으로 부르는 여러 족속들은 모두 예맥에 포괄되며, 여기에 [[부여]]의 한 갈래로 [[한강]] 유역에 자리잡고 커진 [[백제]] 역시 고구려의예맥족의 별종이다나라이다.
== 발흥지 ==
예맥은 기원전 2~3세기 경부터 현대 중화인민공화국 [[랴오닝성]]과 [[지린성]] 일대의 [[송화강]], [[압록강]] 유역에서 발흥하여, 이후 차츰 [[북한]] 일대([[한반도]]의 [[평안도]]·[[함경도]]·[[강원도]]), 로 이주하였다. [[부여]](扶餘)·[[고구려]]·[[옥저]]·[[동예]] 등으로 부르는 여러 족속들은 모두 예맥에 포괄되며, 여기에 [[부여]]의 한 갈래로 [[한강]] 유역에 자리잡고 커진 [[백제]] 역시 고구려의 별종이다.
 
《[[삼국지]]》〈위서〉「동이전」에 따르면 예족은 호랑이에 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는데, 곽박의 《[[이아]](爾雅)》, 《[[일본서기]]》 등을 근거로 '맥(貊)'이 곰을 의미했고 예족과 맥족의 관계가 [[단군신화]]에 반영되었다는 주장이 있다.<ref>《한국사》 1권, p.145 ~ 146</ref> 이로부터 단군신화(檀君神話)에는 하늘과 태양을 숭배하는 천신족(天神族)이 곰을 토템(totem)으로 하는 맥족(貊族)과 호랑이를 토템으로 하는 예족(濊族)을 평정하고 복속시키는 사실을 설화로서 전해주는 신화(神話)로 남아있다고 여겨지고 있으나 단군신화는 예맥족이 발흥한 기원전 2~3세기 보다 1400여년이나 늦은 고려시대의 삼국유사에서 기록되어서 고증할 방법도 신빙성이 낮다있다.<ref name="예맥족"/>
 
== 평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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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의 터전은 지금의 [[만주]] [[쑹화강]] 유역을 중심으로 했는데, 거기에서 [[동부여]]가 나오고, 그 [[동부여]]에서 [[고구려]]의 지배층이 된 [[주몽]] 집단(계루부 왕실)이 나왔다. [[주몽]] 집단은 [[압록강]] 일대에 진출하여 졸본부여, 곧 [[고구려]]를 세우게 된다. 그러자 압록강 유역에서 먼저 살던 주민들 중 일부(비류·온조 집단)가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 [[한강]] 유역에서 [[백제]]를 세웠다. 따라서, [[고구려]]와 [[백제]] 모두 [[부여]]에서부터 분리된 집단이다.
 
[[가야]]가 있던 [[경상남도]]의 지역에서도 청동 솥을 비롯해 북방 유목민족이나 [[부여]] 계통의 유물들이 나오는데, [[부여]]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반도 남동부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증거가 된다. 게다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의 시조 [[대조영]]도 [[발해]]는 “부여, 옥저, 변한, 조선의 땅과 바다 북쪽 여러 나라의 땅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하여 부여를 자신들의 오래 된 조상의 나라로 보았다. [[중국]] [[송나라]] 때의 역사책 ‘무경총요’에서도 [[발해]]가 “부여에서 떨어져 나온 집단으로 본래 예맥의 땅이었다.”고 하여 [[발해]]가발해가 [[고구려]]와고구려와 [[백제]]처럼 [[부여]]에서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것으로 보았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0049112|제목=동북평원 700년 지배한 ‘한민족의 뿌리’|저자=임덕철 기자|날짜=2004-01-14|출판사=경향신문(네이버)|확인날짜=2013-07-01}}{{깨진 링크|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10&oid=032&aid=0000049112 }}</ref>
 
== 논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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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
* [[여진족한민족]]
* [[숙신]]
* [[말갈]]
* [[물길]]
* [[고조선]]
* [[부여]]([[북부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