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나오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주된 주장과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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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이완 문제]]와 관해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의 [[유엔]] 가입을 허용하고 유엔에서 이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ref>{{웹 인용 |url=http://www.eda-jp.com/dpj/2002/kan/gendai-0208.html |제목=『 救国的自立外交私案 』 -タブーなき外交論 |확인날짜=2010-06-19 |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00103020746/http://www.eda-jp.com/dpj/2002/kan/gendai-0208.html |보존날짜=2010-01-03 |url-status=dead }}</ref>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일본인 납치 문제와 핵문제에 관해서는 새로운 발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간 총리는 신임의원 시절에 그의 선배 의원인 [[덴 히데오]]의 요구에 따라, ‘[[신광수|재일 한국인 정치범 석방의 필요서]]’에 서명하였다. 이 안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의 용의자인 [[신광수]]를 시작으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스파이 용의자 10명이 포함 되어 있다. 이 사실을 사전에 알지 못한 사실은 공명당이나 사회당과 똑같이 서명을 한 의원으로서 비판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관계된 언행에서는 강경한 편인데, [[니시무라 신고]]의 지원유세를 할 때, “[[사담 후세인|후세인]]이나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의 동상이 무너진 역사 속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저 큰 동상도 무너지는 날도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라는 발언을 하였다. 이 발언을 들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당국은 “간 나오토는 원래 신념도 정책도 아무것도 없는 정치인” 이라고 일방적으로 격하게
* 나가사키 [[이사하야 만]] 간척 사업에 대해서는 자연환경보전의 관점에서의 반대를 하였다. 그리고 1997년 4월 수문이 닫히는 그 시점에 현지의 사업 사무소에 방문해서 TV 촬영 카메라 앞에서 “누구의 지시에 의해 하고 있는 것인가? 책임자는 나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 간 총리는 자민당 의원 중에서 세습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고 있지만, 자신에 관해서는 간 총리의 장남인 간 겐타로가 [[제43회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2003년 중의원 총선거]]에서 간 가문의 본적지인 오카야마 1구에서 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입후보 하였다. 이 장남이 입후보한 것에 관해서 지역 기반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지연, 간판, 학연’에 의한 세습의 폐해를 이어가지는 않아서 세습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민주당 내규에 따르면, 동일 선거구에서의 세습을 금지하고 있는데, 간 총리는 이를 따른 것으로 보인다.
* 헌법 개정 논의에 관해서는 대표 시절에 “일본이 나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새로운 헌법을
* 수상 재임 기간에 대해서는 “수상이라는 것은 적어도 4년은 같은 인물이 계속해야 한다. 평소 하토야마 총리에게도 말하고
* 미일 관계에 관해서는 “정치적으로는 미일 동맹을 생각하는 설계는 컸으며, 이제부터 아시아와 세계 안정을 위해서 중요한 관계”<ref>[http://sankei.jp.msn.com/politics/situation/091228/stt0912281903003-n1.htm 菅副総理「日米関係が最重要」] {{웨이백|url=http://sankei.jp.msn.com/politics/situation/091228/stt0912281903003-n1.htm |date=20100103015541 }} MSN産経ニュース 2009年12月28日</ref> 라고 말하였다.
* [[오키나와현]]의 미군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와 관련해서는 “기지문제는 어떻게도 안 된다. 더 이상 손을 대기
[[파일:Naoto Kan and Barack Obama 20100627 3.jpg|섬네일|270px|2010년 6월 27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간 나오토(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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