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질 (1422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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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평안도]][[관찰사]], [[공조판서]], [[병조판서]], [[우참찬]], [[경상도]][[관찰사]] 등을 지내고, [[1468년]] [[우의정]], [[좌의정]]이 되었다. [[1468년]] [[조선 세조|세조]]의 사망과 [[1469년]] [[조선 예종|예종]]의 사망 당시에는 [[원상]]의 한사람으로 정무를 처결하였다. 그 뒤 [[조선 성종|자을산군 혈]]을 지지하고, [[조선 성종|성종]] 즉위 직후에는 왕족 [[귀성군]]을 숙청하였다.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2등으로 상락부원군(上洛府院君)에 봉군되었다.
 
관직은 [[의정부]][[좌의정]]에 이르렀고, [[조선 성종|성종]] 초에 〈경국대전〉의 편참에 참여하였다. 고려의 장군 충렬공 [[김방경]]의 후손으로, [[개국공신]] 익원공 [[김사형]]의 증손자이자 [[의정부]] [[영의정]]을 지낸 [[정창손]]의 사위이다. 또한 [[강희맹]]의 사돈으로 [[강희맹]]의 딸은 그의 아들 [[김성동 (조선)|김성동]]과 결혼했다. [[조선 세조|세조]] 사후 [[영의정]] [[한명회]], [[신숙주]] 등과 함께 원상(院相)세력을 형성하였으며, [[원상제]]의 전범이 되었다. 낙풍부원군 [[김자점]]의 5대 선조이며 백범 [[김구]]의 20대 방조에 해당된다.
 
== 생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