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 페트로비치 황태자: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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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표트르 1세]]
|어머니 = [[예브도키야 로푸히나]]
|배우자 =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샤를로테 크리스티나크리스티네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자녀 = [[나탈리야 알렉세예브나 여대공]]<br />[[표트르 2세]]
|친인척 = [[안나 페트로브나 황태녀|안나 페트로브나]] (이복 여동생)<br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이복 여동생)<br />[[나탈리야 페트로브나 여대공|나탈리야 페트로브나]] (이복 여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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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트르 1세는 그의 아들과 후계자들이 새로운 러시아를 위해 헌신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새로운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 없는 노동을 요구했다. 표트르 1세가 바쁜 일정을 이유로 돌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알렉세이는 몇몇 반동분자들과 성직자들의 손에서 자라게 된다. 그들은 알렉세이에게 표트르를 증오하고 그의 죽음을 기원했다.
 
1708년 표트르 1세는 알렉세이를 [[스몰렌스크]]로 파견하여 음식과 병사를 제공했고 [[스웨덴]]의 [[칼 12세]] 국왕에 대응하기 위해 [[모스크바]]로 파견했다. 1709년에는 [[드레스덴]]에서 [[프랑스어]], [[독일어]], [[수학]], 요새화 수업을 받았고 1711년 10월 14일에는 [[토르가우]]에서 [[브라운슈바이크뤼네부르크의 샤를로테 크리스티나크리스티네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펜뷔텔]] 결혼했다. 알렉세이는 샤를로테와 결혼하는 조건으로 알렉세이의 아이들은 정교회 신자로 성장하는 동안에 샤를로테는 개신교 신자로 남는 것을 허용했다. 이 내용은 알렉세이의 추종자들이 반대했던 합의 내용이었다.
 
샤를로테 황태자비와의 결혼 생활은 초반 6개월은 잘 되었지만 6개월 만에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알렉세이는 생전에 술에 취했던 경우가 많았으며 자신만의 저택을 따로 지으면서 샤를로테를 무시했다고 전해진다. 알렉세이는 샤를로테와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지만 샤를로테는 1715년 10월 [[표트르 2세]]를 출산한 이후에 사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