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브도키야 로푸히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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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브도키야와 알렉세이는 점차 고위 성직자를 비롯한 표트르 1세의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파의 중심 존재가 되어 갔다. 반대파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드미트리 로스톱스키 주교는 예브도키야를 "우리의 위대한 통치자"라고 부르면서 예브도키야가 곧 황후로 복귀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예브도키야와 알렉세이를 비롯한 보수파는 1718년에 표트르 1세 황제에 의해 숙청되었다. 알렉세이는 고문을 받다 사망했고 예브도키야를 지지하던 주교 전원이 처형되었다. 예브도키야는 [[스타라야라도가]]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추방되었다.
 
표트르 1세가 사망한 이후에 그의 2번째 황후였던 [[예카테리나 1세]]가 러시아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예브도키야는 비밀리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에 위치한 실리셀부르크 요새 안에 위치한 감옥에요새에 수감되었다. 1727년에 예브도키야의 손자인 [[표트르 2세]]가 러시아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면서 예브도키야는 감옥에서 풀려나와서석방되어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예브도키야는 1731년에 [[노보데비치 수녀원]]에서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궁정을 소유할 수 있도록 허락받았다.
 
== 외부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