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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화백은 귀족의 단결을 굳게 하고, 국왕과 귀족 간의 권력을 조절하는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다. 일례로 “정치가 어지럽고 음란하다.”라는 이유로 화백에서 [[진지왕|진지대왕]]을 폐위하였다.
 
한편, 화백과 [[신라]] 고유의 신앙과 결부된 [[경주|서라벌]] 주위의 영산인 청송산(東), 모지산(南), 피전피전산(西), 금강산(北)과의 관련설이 있으나 자세하지 않다. 화백의 원칙은 귀족 뿐만 아니라, [[신라]] 전역에 널리 행하였고, 각계각층의 독재력의 발생을 억제하여 신라 국가의 완전성을 증가하는 요인이 되었다. 학자에 따라 남당(南堂) 회의로 보기도 한다.
 
화백회의에는 20명의 [[성골과 진골|진골]] 출신자만이 참석했으며 각각 대등(大等)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자체 의결을 통해 의장격인 [[상대등]](上大等)을 선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