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제: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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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 천황제
 
== 역사 ==
[[일본서기]]와 [[고사기]]에 따르면 기원전 660년에 성립되었고 천황은 군사측면과 제사측면의 두가지 역할을 가지고 있었다.
 
645년 [[다이카 개신]]으로 천황중심의 정치가 시작되었고 천황이라는 호칭도 사용되었다. 7세기 후반부터 중국을 모방한 [[일본의 율령제|율령제]]가 도입되었다. 701년 [[다이호 율령]]으로 확립된다. 한나라풍으로 역대 전황에 대한 [[시호]]도 부여되었고 [[중앙집권]]적 천황 친정이 이루어졌다. 710년 平城京로 천도했다.
 
9세기부터 귀족층이 정치권력을 장악했고 10세기에는 천황가와 혼인관계를 맺은 [[후지와라 북가]]가 의사결정을 좌우하는 [[섭관정치]]가 시작되었다. 11세기 말에는 [[태상천황|상황]]이 군림하고 실무자가 통치하는 [[원정 (군주제)|원정]]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 [[섭가]]인 [[후지와라씨]]의 지위는 약해졌다.
 
가마쿠라 [[무가정권]]이 성립되어 천황의 조정과 쇼군의 막부라는 이중 정권이 생겨났다. [[조큐의 난]]에서는 막부측이 승리했다. [[가마쿠라 막부]]가 멸망하자 [[고다이고 천황]]이 [[겐무 신정]]으로 천황 친정을 부활시켰다.
 
[[무로마치 막부]] 성립 이후 천황가는 분열되어 [[난보쿠초 시대]]가 된다. 1392년 [[아시카가 요시미쓰]]에 의해 남북조가 통일되었다. 요시미츠는 [[일본국왕]]의 자격으로 [[명나라]] 황제에게 조공하는 [[명일무역]]을 시작했다. 1394년 요시미츠가 죽자 조정은 그에게 태상법황鹿苑院太上法皇이라는 칭호를 주었다.
 
[[아시카가 요시마사]] 시절 [[오닌의 난]]이 일어나며 [[센고쿠 시대]]가 시작된다. 막부도 조정도 쇠퇴했으나 천황가는 [[문화]] · [[전통]]의 계승자라는 역할을 하고있었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천황을 부정하기보단 이용했다. [[에도 막부]]기에 천황의 권위는 유지되었지만 [[금중병공가제법도]]로 통제되었다. [[자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듯 권력은 거의 없었다.
 
[[유교]]가 점차 관학화되면서 [[패자]]인 도쿠가와보다 「みかど」가 정당한 통치자라는 존황론이 [[미토번]]을 중심으로 생겨났다. [[막말]]이 되면서 [[존왕양이]]론으로 확대되었고 천황을 [[도막운동]]의 중심에 있었다. 존황양이론은 천황을 중심으로 외세를 배격하려는 정치사상이었다. [[요시다 쇼인]]의 일군만민은 평등사상처럼 받아들여졌고 막부의 권위를 흔들었다. 하지만 존황양이 지사 일부는 천황을 옥玉이라 부르며 정권 찬탈의 도구정도로 간주했다.
 
[[메이지 유신]]으로 막부가 무너지고 [[나라 시대]] 이후 처음으로 [[태정관]]제로 돌아가는 [[왕정복고]]가 이루어졌다. 신정부는 천황을 전국에 순행시켜 권위를 확립해나갔다.<ref>中奥宏『皇室報道と敬語』三一新書</ref> 메이지 정부는 강력한 [[중앙집권]] 체제였고 사족 반란과 [[자유 민권 운동]]은 진압되었다. 메이지 정부는 의회를 열어 일본을 유럽의 [[입헌군주제]]처럼 만들려고 했다.
 
2차대전 종결 후 [[일본국 헌법]] 상징천황제로 변화하여 현재에 이른다.
 
== 제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