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리크 다라고 왕자 (1400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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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8년 6월, 그의 백모이자 후안 2세의 모후인 랭커스터의 캐서린(1373~1418)이 죽은 후, 엔리케는 친형 후안 왕자와 함께 공동 섭정이 되었다.<ref>Medieval Lands (em inglês)</ref> 이때부터 두 형제간에 권력투쟁이 벌어지기 시작했으며 카스티야 귀족들간에도 파벌이 형성되었다. 1419년 3월 7일 후안 2세가 만 14세가 되어 친정을 선포하자, 두 파벌 간의 긴장은 더욱 증가했다. 권력욕이 강했던 엔리케는 그의 형 후안이 나바라의 블랑쉬와 결혼하기 위해 나바라로 떠나면서 카스티야를 비우자 쿠데타를 일으켰다.<ref>Vicens Vives, Jaume (2003) [1953]. Paul Freedman y Josep Mª Muñoz i Lloret, ed. Juan II de Aragón (1398-1479): monarquía y revolución en la España del siglo XV. Pamplona: Urgoiti editores. ISBN 84-932479-8-7. p31</ref> 1420년 7월14일 새벽 토르데시야스에 있는 왕궁으로 쳐들어가서 후안 2세(1405~1454)를 구금하였고 그의 형 후안(1398~1479) 왕자를 따르던 귀족들을 모두 제거한 후 정권을 장악하였다.
 
1420년 8월, 국왕 후안 2세(1405~1454)를 아빌라로 데려간후 자신의 여동생 마리아와 강제로 결혼시켰다.<ref>Vicens Vives, Jaume (2003) [1953]. Paul Freedman y Josep Mª Muñoz i Lloret, ed. Juan II de Aragón (1398-1479): monarquía y revolución en la España del siglo XV. Pamplona: Urgoiti editores. ISBN 84-932479-8-7. p40</ref> 소식을 접한 엔리케의 형 후안이 군대를 일으켜 올메도에 도착하자 엔리케는 왕을 데리고 탈라베라로 이동하였다. 11월 29일, 국왕 후안 2세가 [[알바로 데 루나]]와 함께 탈출에 성공하여 몬탈반 성으로 피신하였다. 엔리케가 성을 포위했으나 폭풍으로 인해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철수하였고 날이 갈수록 귀족들이 지지를 철회하자 힘을 잃어버리게 되었다.<ref>Vicens Vives, 2003, p. 42-43.</ref> 1423년 반역죄로 체포되어 산티아고 기사단장직을 제외한 모든 직위와 재산을 몰수당한채 모라성에 감금되었다. 카스티야 국왕 후안 2세는 자신의 탈출을 도와 쿠데타가 무산되는데 큰 공을 세운 알바로 데 루나를 카스티야의 총사령관(Constable of Castile)으로 임명하였다.<ref> Vicens Vives, Jaume (2003) [1953]. Paul Freedman y Josep Mª Muñoz i Lloret, ed. Juan II de Aragón (1398-1479): monarquía y revolución en la España del siglo XV. Pamplona: Urgoiti editores. ISBN 84-932479-8-7. p47</ref> 엔리케의 형 아라곤의 국왕 알폰소 5세의 외교적 노력과 압박 덕분에 석방되었다.
 
=== 권력 회복 (1427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