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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과 문화 ==
 
도루묵의 옛 형태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청주 출토 순천 김씨 묘 출토 간찰]](16세기)에 기록된 ‘돌목’이다. 조항범은 이 이름이 ‘목’이라는 이름에 상대적으로 조잡한 생물에 붙이는 ‘돌-’이 붙은 것으로 추정했다.<ref name="조항범2007">{{저널 인용 |저자=조항범 |날짜=2007-05 |제목=‘도루묵’의 語源 |url= |저널=국어국문학 |출판사= |권= |호=145 |쪽=145-170 |doi= |확인날짜=2020-08-15 }}</ref> 이후 발음이 변하여 [[조재삼]]의 《[[송낭잡지]]》(19세기 후반)에 ‘도로목(都路木)’이라는 차자 표기가 확인된다.
 
조선시대 초에는 도루묵을 '''은어'''(銀魚)로 기록하고 있다. 이에 관련해 도루묵이란 이름에 대한 [[민간어원]]이 있는데, 원래 ‘목어(目魚)’이었던 물고기 이름을 왕이 그 맛을 좋아해서 ‘은어(銀魚)’로 바꿨는데, 싫증이 나 도로 목어(還目魚)로 바꿨다는 설이 그것이다. 이는 허균의 《[[도문대작]]》(1611), 이식의 시 〈환목어(還目魚)〉(1631), [[이의봉]]의 《[[고금석림]]》(1789), 《[[난호어목지]]》(1820년경), 《[[송낭잡지]]》(19세기 후반) 등에 등장하는데, 후대로 갈 수록 왕이 피난을 갔다는 서사가 붙는 등 이야기가 각색이 된다.<ref name="김양섭2016">{{저널 인용 |저자=김양섭 |날짜=2016-06 |제목=임연수어ᆞ도루묵ᆞ명태의한자표기와 설화에 대한 고증 |url= |저널=민속학연구 |출판사=국립민속박물관 |권= |호=38 |쪽=6-31 |doi= |확인날짜=2020-08-15 }}</re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