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실로프 공세: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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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단시간의 기습적인 준비포격 후 브루실로프의 보병이 일제공격을 시작하였을 때 오스트리아군의 방어선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브루실로프군의 우익 제8군은 오스트리아 제4군과 제2군의 간격을 돌파하여 [[6월 10일]]에 [[루츠크]]를 점령하고 80km의 돌파구를 이루었으며, 좌익의 제9군은 [[체르노빗츠]] 북방을 공격하여 [[프루드 강]]에 도달하였다. 오스트리아군은 제4군과 제7군이 격파당하고 중앙의 제2군과 남부군만이 [[렘베르크]] 전방의 방어진을 확보하고 있었다.
 
6월말에 이르러 브루실로프군은 우익에서 교통중심지 [[코벨 (우크라이나)|코벨]]과, 좌익에서 [[카르파티아 통로]]를 위협하고, 동맹군에게 70만 이상의 손실을 주었다. 러시아군이 [[1915년]]에 결정적으로 패퇴되었으리라 믿고 [[베르됭 전투]]에 주력하고 있었던 독일군에게는 이 사건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힌덴부르크]]와 [[루덴도르프]] 장군은 용기와 자신을 가지고 모든 가용병력을 집결시키고 서부전선으로부터 4개 사단, 트렌티노 방면으로부터 오스트리아군 2개 사단을 증원받고, 오스트리아군의 지휘권을 장악하여 돌파된 전선의 봉쇄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기동력이 부족한 러시아군은 우수한 철도망을 이용하여 급속도로 증원되어 가는 오스트리아와 독일군을 감당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