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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咸鏡道)는 [[조선]] 시대의 행정 구역이다. 철령의 북쪽에 있다고 하여, '''[[관북 지방]]'''(關北地方)이라고도 한다. 함경남북도의 최대의 도시는 [[함흥시|함흥]]이다.
==역사==
=== 상고와 고대 === 원래 이 지역은 [[고조선
==
발해가 [[요나라|거란족]]의 침공으로 멸망한 이후에 이 지역은 일시적으로 [[동단국]]이 지배했다가, 거주민들의 반발과
[[고려 고종|고종]] 22년([[1234년]])부터 개시된 [[몽골 제국]]의 침입하였다. 1258년 [[조휘]](趙暉)와 [[탁청]](卓靑) 등이 철령 이북의 땅을 바치며 원나라에 투항했다. [[고려 원종|원종]] 12년([[1270년]])에 고려 정부는 원에게 투항하였다.
▲발해가 [[요나라|거란족]]의 침공으로 멸망한 이후에 일시적으로 [[동단국]]이 지배했다가, 거주민들의 반발과 정치적 역량이 미숙하여 동단국은 철퇴하였다. 이로써 함경도는 200여년 간 무주지의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한편, 함경도의 남부 지방은 [[고려 태조|태조]]의 북진정책으로 말미암아 함흥 평야 일원까지 회복하였다.
[[공민왕|공민왕(恭愍王)]]은 배원(排元)의 기치를 내세우며 옛 영토를 수복하는 과정에서 쌍성총관부를 폐지시키고, 아울러 함경도의 대부분을 수복하였다. [[이성계]]와 그의 생부인 [[이자춘]](李子春)은 쌍성총관부 소복 과정에서 새로이 정계에 진출했으며, 훗날 이성계는 [[조선]]을 수립하게 된다.
=== 여진 ===▼
▲12C에 성립된 [[금나라|여진족]]은 [[고려]]의 [[천리장성]]의 남북을 오가며 약탈을 일삼았다. 그러자 고려의 중앙 정부는 이를 방조할 수 없다고 여기고, [[윤관 (고려 군인)|윤관]]에게 별무반을 통솔하게 하여 여진족을 토벌시켰다. 윤관은 여진족을 정벌한 직후에 동북9성을 축조하여 여진족을 제어하여, 함경도 일대를 수복하였다. 그러나 여진족의 간곡한 요청(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기고 조공을 바치겠다고 약속)으로 인하여, 9성에서 철수하였다.
[[조선]]이 건국된 이후, [[회령군|회령부]]사(會寧府使)였던 [[이시애]]가 부친상으로 관직에서 사퇴한 이후에, 중앙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가진 함경도 백성들과 유생들의 열화에 힘입어서 반역을 계획하게 된다. 여진족까지 동원했던 이시애가 패주하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관군에 의해 참형을 당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당시에 함길도였던 함경도를 2개의 도로 분할되었다. 이로 인하여, [[함흥시|함흥부]](咸興府)
건양 원년(
=== 현대 ===
독립 이후에 발생한 [[한국전쟁]]이 종결된 직후인 [[1954년]] 10월에 [[량강도
== 옛 이름 ==▼
예로부터
* 영길도(永吉道, [[조선 태조]] ~ [[1416년]])▼
* 함길도(咸吉道, [[조선 태종|태종]] 17년([[1416년]]) ~ [[1470년]])▼
▲[[조선]]이 건국된 이후, [[회령군|회령부]]사(會寧府使)였던 [[이시애]]가 부친상으로 관직에서 사퇴한 이후에, 중앙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가진 함경도 백성들과 유생들의 열화에 힘입어서 반역을 계획하게 된다. 여진족까지 동원했던 이시애가 패주하다가 부하들의 배신으로 관군에 의해 참형을 당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당시에 함길도였던 함경도를 2개의 도로 분할되었다. 이로 인하여, [[함흥시|함흥부(咸興府)]]가 함흥군(咸興郡)으로 격하되었고, 감영이 [[영흥군]](永興郡)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리고 함길도의 이름은 승격된 영흥부(永興府)와 [[안변군|안변도호부(安邊都護府)]]의 두자를 따서 영안도로 바뀌게 된다. 이 이름은 [[조선 중종|중종]] 4년([[1509년]])에 함경도의 이름으로 개정될 때까지 유지된다.
* 영안도(永安道, [[조선 세조|세조]] 16년([[1470년]]) ~ [[1509년]])▼
* 함경도(咸鏡道, [[조선 중종|중종]] 4년([[1509년]]) ~ 현재)▼
▲건양 원년(元年, [[1896년]])에 [[함경남도]]와 [[함경북도]]가 분리되었다. 한편, [[광무]] 6년([[1902년]])에 [[간도]]관리사(間島管理使)로 [[이범윤]]을 임명하고 간도지역을 함경북도에 포함시켜, 그를 북간도 지역에 파견하여, 그로 하여금 서간도와 북간도(즉, 남만주)의 한국민들을 보호하였다. 그러다가 [[융희]] 3년([[1909년]])에 [[청나라|청 제국(淸帝國)]]과 [[대한제국|대한제국(大韓帝國)]]의 외교권을 강탈해 간 [[일본 제국|일본 정부]] 사이에 체결된 소위, [[간도협약|간도협약(間島協約)]]으로 말미암아 함경북도의 영역은 축소되었다. 이런 상황은 당금에 이르고 있다.
▲독립 이후에 발생한 [[한국전쟁]]이 종결된 직후인 [[1954년]] 10월에 [[량강도|양강도(兩江道)]]가 신설되었다. 이후, 양강도는 함경남도가 관할하던, [[백두산]] 이남 지역의 [[개마고원|부전고원(赴戰高原)]] 지역을 담당하게 되었다. 이후에 함경북도는 [[1993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의 자유경제구인 나진선봉시의 성립과 더불어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1994년]], 나진선봉시가 나진선봉특급시(羅先特級市)로 격상되면서 함경북도의 관리에서 이탈하게 된다.
==== 삼각권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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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대삼각권역은 [[함경북도]] [[청진시]]와 [[중화인민공화국|중국]] [[옌볜 조선족 자치주|연변]]의 [[옌지|연길시(延吉市)]], [[러시아 연방|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이어서 나오는 삼각형의 내부이다.
▲== 옛 이름 ==
▲예로부터 조선(소위,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국토였으며, 고려대(高麗代)에는 영토로 편입시키지 못하였고 [[만주족|여진족]] 등의 이민족에 복속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북방 개척으로 말미암아 조선대(朝鮮代)에 이르러 명칭을 가지게 되었다. 그 변천은 아래와 같다.
▲* 영길도(永吉道, [[조선 태조]] ~ [[1416년]])
▲* 함길도(咸吉道, [[조선 태종|태종]] 17년([[1416년]]) ~ [[1470년]])
▲* 영안도(永安道, [[조선 세조|세조]] 16년([[1470년]]) ~ [[1509년]])
▲* 함경도(咸鏡道, [[조선 중종|중종]] 4년([[1509년]]) ~ 현재)
== 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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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도시 ===
* [[함흥시]] - [[조선]]을 건국한 후에 감영이 설치된다. 이후, 관북의 최대 도시로 성장.
* [[원산시]] -
* [[나선특급시|나선시]] - 20세기 후반 [[북조선]]이 이곳을 경제적으로 개방하였다.
▲* [[원산시]] - 원산은 안변의 근처에 있는 도시로서, [[이성계]]의 선조들이 거주했던 지역이다. 이 도시는 [[1880년]], [[1876년]]에 폭압적인 시위에 의하여 체결된 [[강화도 조약]]에 의거해 개항되었다.(개항 이유 : [[일본 제국]]의 제정 러시아에의 견제) 이로써 도시는 급성장을 하게 되었고, 이는 [[경원선]]의 개통으로 더욱 가속되었다.
== 더 알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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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산시]]
* [[량강도]]
[[분류:한국의 행정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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