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카와 히데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1970년에 교토 대학을 정년 퇴임해 교토 대학의 명예교수가 됐으며 말년에는 [[생물학]]에도 관심을 가졌고 특히 생명 현상에 있어서 정보의 역할에 대한 관심을 가졌다. 또한 [[에도 시대]] 후기의 사상가인 [[미우라 바이엔]]의 심취에 깊이 빠졌다. [[휘호]]를 부탁받으면 자주 ‘지어락’({{llang|ja|知魚楽|치교라쿠}}, ちぎょらく)이라고 썼다. ‘물고기의 즐거움을 알라’({{lang|ja|魚ノ楽シミヲ知ル}})는 [[장자]]의 ‘추수’(秋水)의 마지막 한 구절이다.
 
1966년에는 [[노벨 평화상]] 후보자로 추천돼 있었다는 것이사실이 [[노벨 재단]]이 공표한 후보자 명단에 의해 판명됐다.<ref>[http://www.nobelprize.org/nomination/archive/show_people.php?id=10359 Nomination Database] - 노벨 재단 홈페이지</ref>
 
교토 대학에서 정년 퇴임 후인 1975년에 [[전립선암]]이 발병돼 수술을 받았다. 수술에 의해서 암의 진행은 막았지만 그 이후에는 자택에서 요양을 계속하면서 학술 활동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미국과 소련 양국의 긴장 격화로 제4회 과학자 교토 회의의 발기인의 한 명으로서 1981년 6월, 15년 만에 회의 개최가 성사됐다. 이 때 이미 건강 상태가 나빠지면서 회의에서는 휠체어에 의지한 상태에서 참석해 핵폐기를 호소했다. 3개월 뒤인 같은 해 9월, [[폐렴]]에 [[심부전]] 합병증으로 [[교토시]] [[사쿄구]]의 자택에서 향년 74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묘소는 교토시 [[히가시야마구]]에 소재한 [[지온인]]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