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아 플로티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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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티나의 서명이 담긴, 트라야누스가 임종 중에 작성했다고 전해지는 유서가 로마에 나타났고, 그 유서에서 그가 하드리아누스를 입양하고 제국의 후계자로 지명한다는 내용이 전해지자, 의혹들이 일어났다. 아티아누스와 황후 플로티나가 자신들의 피후견인이었던 하드리아누스를 매우 좋아했으며, 이들이 117년 8월 [[킬리키아]]의 [[셀리누스]]에 있는 트라야누스 임종에 있었다는 점에서 이들이 연인 관계였다라는 것과 트라야누스의 유언을 꾸며내어 하드리아누스의 계승을 확고히 하는 걸 도왔다라는 소문이 일어났다.<ref name="school"/>
 
Annelise Freisenbruch는 “2세기의 조용한 배우자였던 플로티나는, 이에 따라 남편의 죽음을 덮었거나 음모를 꾸몄다라는 의혹을 제기받은 로마 제정 시대의 여성들인 리비아, 아그리피나 미노르, 도미아에 합류했다.”라며 이 의혹을 부정했다. 그녀는 트라야누스가 단순히 직접 편지를 쓰기엔 너무 쇠약해졌을 수도 있다라며, 왜 플로티나의 서명이 그 선언문에 합법적으로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한 많은 그럴듯한 해명들이 있다고 언급했다. Freisenbruch는 또한 notes 이러한 종류의 의혹들이 수 세기간 지배자의 배우자들에게 뒤따랐다라며 언급했다.<ref>Freisenbruch, ''Caesars’ Wives'', pp. 162f</ref>
 
아티아우스 그리고 [[살로니아 마티디아|마티디아]]와 함께, 비탄에 잠긴 미망인 플로티나는 [[셀레우키아 피에르시아|셀레우키아]]로 향하는 트라야누스의 시신과 같이 동행했고 로마로 향하는 그의 재와 동행했다.
 
== 각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