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치개혁당: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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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종은 1990년 6월에 [[김영삼]]의 [[3당 합당]]에 반대하던 [[통일민주당]] 인사들이 창당한 [[민주당 (1990년)|민주당]]에 입당했으나 [[이기택]] 총재 중심의 정당 활동에 반발하여 1991년 9월에 탈당했다. 박찬종은 1992년 2월 25일에 정치 신인들과 함께 정치개혁협의회를 구성하여 신정치개혁당을 창당했다. 당초 정치개혁협의회는 [[김동길]] 태평양시대 위원장과 함께 새한당 창당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새한당 창당준비위원장이던 김동길 위원장이 [[통일국민당 (대한민국)|통일국민당]]과의 통합을 결정하자 이에 불복하고 독자 창당을 하게 된 것이었다.
 
신정치개혁당은 [[1992년]] [[3월 24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지역구 후보자 11명111명(서울 28명, 부산 5명, 대구 4명, 인천 4명, 광주 0명, 대전 3명, 경기 15명, 강원 9명, 충북 7명, 충남 10명, 전북 5명, 전남 5명, 경북 6명, 경남 10명), 전국구(비례대표) 후보자 14명(1번 [[송현섭]], 2번 [[김봉욱]], 3번 [[정웅]], 4번 이재환, 5번 [[김재위]], 6번 이상윤, 7번 이동성, 8번 이강선, 9번 [[강만희]], 10번 주장선, 11번 양창병, 12번 이재승, 13번 이강옥, 14번 조석환)이 입후보했으나 지역구 투표에서는 서울 서초구 갑 선거구에 출마한 [[박찬종]] 후보만 당선되었을 뿐 나머지 후보들은 모두 낙선했다. 또한 전국구 투표에서도 득표 수 369,044표, 득표율 1.8%를 기록하여 전국구 의석 획득에 실패했다.
 
박찬종은 1992년 12월 18일에 실시된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4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박찬종에 의존하는 정당 활동으로 인해 한계를 가졌고 [[1994년]] [[7월 8일]]에 [[김동길]] 대표가 이끌던 [[통일국민당 (대한민국)|통일국민당]]과 합당하여 [[신민당 (1994년)|신민당]]이 창당됨으로써 해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