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연: 두 판 사이의 차이

내용 삭제됨 내용 추가됨
편집 요약 없음
편집 요약 없음
23번째 줄:
|종교 =
|정부형태 =[[군주제]]
|지도자_칭호 = [[황제천왕]]<br />407년 ~ 409년<br />?<br />?<br />409년 ~ 430년<br />431년 ~ 436년
|지도자_이름 = <br />[[고운 (북연)|고운]]<br />[[풍화 (북연)|풍화]]<br />[[풍안 (북연)|풍안]]<br />[[풍발]]<br />[[풍홍]]
|지도자_칭호1 =
61번째 줄:
내전 이후 북연은 북위의 압박을 받아 나라가 위태로운 상황이 되자 풍홍은 [[435년]]에 종주국(宗主國) 고구려에 사신을 보내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고구려로 망명하기를 요청하였다. 결국 풍홍이 예측한 대로 [[436년]]에 북위가 침공하여 백랑성(白狼城)이 함락되고 수도인 용성마저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풍홍은 고구려의 장수왕에게 망명을 요청 하였으며 이에 장수왕은 2만의 병력을 보내 북위군보다 먼저 용성에 도착해 풍홍과 수많은 후연 귀족들과 여성들과 백성들을 끌고 갔다. 고구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목숨을 부지한 풍홍은 요동성에 머물다가 장수왕에 반역을 일으키게 되고 이에 분노한 장수왕은 풍홍의 처제와 자식을 인질로 잡고 풍홍은 고구려의 외곽지역인 북풍으로 강제 이송시킨다. 그러자 풍홍은 남조의 [[송 (남조)|유송]]에 망명요청을 했다. 이에 응한 송나라가 사신 왕백구를 고구려로 보내 풍홍을 망명시킬 것을 요청하자 장수왕은 풍홍을 위험인물로 간주하여 [[438년]]에 중국인 풍흥의 처와 모(母)만 남기고 풍흥을 사형시켰다.
 
== 역대 황제천왕 ==
{{중국 황제 (북연-십육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