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레카논 전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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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돌과 결과 ==
안드로니코스 3세는 [[:en:Grand Domestic]] [[요안니스 6세]]과 함께 약 4,000명의 군대를 이끌었는데, 이것은 그가 한 행동중 가장 위대한 것이었다. 그들은 [[마르마라해]]를 따라 니코메디아를 향해 행진했다. 펠레카논에서 오르한 1세가 이끄는 튀르크군은 전략적 우위를 점하기 위해 언덕에 진을 치고 니코메디아로 가는 길을 막았다.<ref name="Nicol">{{cite서적 book인용|last=Nicol|first=Donald M.|title=The Reluctant Emperor: A Biography of John Cantacuzene, Byzantine Emperor and Monk, C. 1295–1383|publisher=Cambridge University Press|year=2002|ISBN=9780521522014|pages=32–33}}</ref> 6월 10일 오르한 1세는 300명의 기병 궁수들을 내리막으로 보내 비잔티움인들을 언덕으로 유인했지만, 이들은 더 이상 전진하지 않으려는 비잔티움인들에 의해 쫓겨났다.<ref name=Treadgold/><ref>{{cite서적 book인용|last=Kyriakidis|first=Savvas|title=Warfare in Late Byzantium, 1204–1453|publisher=BRILL|year=2011|ISBN=9789004206663|page=204}}</ref> 호전적인 군대는 해가 질 때까지 우유부단한 충돌을 벌였다. 비잔티움 제국군은 퇴각할 준비를 했지만 튀르크군은 그들에게 아무런 기회도 주지 않았다.<ref name="Nicol"/> 안드로니코스 3세와 요안니스 6세 모두 경상을 입기만 했지만, 황제가 죽거나 위독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공황 상태에 빠졌다.<ref name="Nicol"/> 결국 퇴각은 비잔티움 제국 쪽에서 많은 사상자를 내면서 대패하였다.<ref name=Treadgold/><ref name="Nicol"/> 요안니스 6세는 남은 비잔티움 제국 병사들을 이끌고 바다를 통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왔다.<ref name=Treadgold/><ref name="Nicol"/>
 
== 결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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