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 (관등):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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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伊湌''')은 [[법흥왕]] 7년(520년) 에 시행한 [[신라]] 17관등(官等)의 제2등으로 [[잡찬]]의 위이다. '''이척찬'''('''伊尺湌'''), '''일척간'''('''一尺干'''), '''이간'''('''伊干''')이라고도 한다.
== 개요 ==
* [[진골]](眞骨)만이 될 수 있는 관등으로, 특히 이찬(伊湌)은 상대등이나 집사부(執事部)의 중시(中侍 : 뒤의 侍中), 그 밖에 [[병부]](兵部)를 비롯한 중앙의 제1급 관청의 장관직인 영(令)에 주로 보임된다.
*《[[삼국사기]]》에는 [[유리 이사금]] 9년(32년) [[노례왕]] 때에 17관등의 제정과 함께 처음으로 설치되었다고 하며 사료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파사 이사금]] 5년(84년) 2월 [[명선]](明宣)을 이찬(伊湌)에 임명한 기록이다. [[파사 이사금]] 23년([[102년]])에 [[금관가야]]의 [[수로왕]]에게 잔치를 베풀 때 [[한기부]]를 제외한 5부에서 모두 이척찬(伊尺湌)으로 잔치를 주관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어 [[이찬]]은 처음에는 관직의 성격을 띠고 있었으나 [[520년]]([[법흥왕]] 7년) [[율령]]을 공포할 때 관등으로 개편된 것이다. 공복은 자색(紫色)이다.
 
== 대표적 인물 ==
* [[김용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