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접기"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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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송나라때, 전통 장례식의 관행으로 장례식 제물들을 종이로 만들어서 놓은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초기에는 일종의 주술과 비슷한 것이었다고 한다. 당시 종이는 매우 귀한 재료였으며 문자를 기록하는 본래의 용도 이외에 물건을 포장하거나 의식(儀式)의 용도로도 사용되었다.
 
일본의 경우 헤이안 시대, 일본의 문신(文臣)이자 시인이었던 [[후지와라노 기요스케]]가 쓴 "청보조신집(清輔朝臣集)'에 개구리 종이접기에 대한 설명이 있고 1680년 일본의 작가이자 시인이었던 [[이하라 니시츠루]]가니시츠루가 읊은 '노제가 꾼 꿈의 나비는 오리스에'에서도 종이접기 문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오리스에는 오초·메초(숫나비·암나비)라 불리는 종이접기로 결혼식 때 사용되었다. 서양의 경우 13세기 요하네스 데 사크로보스코가 쓴 천구론(天球論)의 삽화에 종이배와 유사한 모양이 등장한다.
 
18세기 일본에서는 종이학이나 얏코산같은 전승종이접기가 등장하여 풍속화나 기모노에 삽입되었고 19세기 유럽에서는 기사나 말의 종이접기 작품이 아직까지 남아있다. 19세기 중순 독일의 [[프리드리히 프뢰벨]](Friedrich Froebel)은 그의 교육법인 가베(GABE)의 제 15작업으로 종이접기를 채택하였다. 이것이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에 받아들여지면서 동서양의 전승종이접기가 하나로 융합되어 다시 전 세계로 퍼져나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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